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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의 마지막 충신, 이시다 미쓰나리 石田三成다이묘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이에야스에게 투신하면서 다른 다이묘들이 이에야스 휘하로 속속 집결한 것이다. 드디어 10월 21일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미쓰나리 군은 전투 초기에는 분투했으나 이에야스의 이간책과 회유책으로 아군들이 배반하고 전세를 관망만 하자 점점 형세가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출생 :
- 1560년
- 사망 :
- 1600년
- 국적 :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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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250년의 체제를 세우다, 도쿠가와 히데타다 德川秀忠밀어내고 실질적으로 적장자의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1584년에는 인질이 되어 히데요시의 성으로 들어갔다. 1609년 아버지 이에야스의 운명을 가른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히데타다는 3만 8천 명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세키가하라로 향했다. 그러나 진군 도중 공명심을 앞세워 아버지가...
- 출생 :
- 1579년
- 사망 :
- 1632년
- 국적 :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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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추 다카마쓰성 전투 Siege of Takamatsu, 備中高松城の戦い고다이로가 되었다. 이 전투 뒤에 빗추 다카마쓰 성에는 우키타 가문(宇喜多氏)의 가로 하나부사 가문(花房氏)가 입성하였다. 후에 하나부사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부대장이 된 주군 우키타 히데이에를 배신하고 동군에 붙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에는 하타모토까지 출세하였다. 몇 년 후 하나부사 가문이...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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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에서 다이묘의 서열라고 부른다. 고산케의 번주는 쇼군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경우 후계자를 세울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는 대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부터 이에야스의 가신이었던 이들이며,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며 복속된 다이묘들이다. 후다이 다이묘는 막부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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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성 康遇聖당시 12살이었던 그도 포로 속에 섞여 일본으로 끌려간 듯하다. 주로 대판(大阪) 또는 경도(京都) 부근에서 10년 동안의 억류생활을 보냈다. 1600년 9월 세키가하라전투(關ケ原戰鬪)가 일어났을 때에는 도쿠가와(德川家康) 쪽에서 전투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으며, 1601년 6월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 시대 :
- 조선 후기
- 출생 :
- 1581년(선조 14)
- 사망 :
- 미상
- 경력 :
- 부산훈도
- 유형 :
- 인물
- 관련 사건 :
- 임진왜란
- 직업 :
- 역관
- 대표작 :
- 첩해신어
- 성별 :
- 남
- 분야 :
- 언어/언어·문자
- 본관 :
- 진주(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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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마쓰리 도쿄 축제, 神田祭り3대 마쓰리이자 오사카의 텐진 마쓰리(天神祭り), 교토의 기온 마쓰리(祇園祭り)와 함께 일본의 3대 마쓰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벌인 축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장식의 가마 수십 대가 지나가는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
- 위치 :
- 간다 신사-JR 오차노미즈(御茶ノ水)역 히지리바시(聖橋) 출구에서 도보 5분
- 소재지 :
- 東京都千代田区外神田2-16-2
- 행사시기 :
- 5월 15일에 가까운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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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정체성 확립을 도운 시마바라의 난합쳐졌기 때문이다. 봉기군의 주력은 천주교도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선봉이며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일본의 패권을 둘러싼 싸움(세키가하라전투)에서 패해 참수되었다는 점이 복수심을 낳고 잡다한 성분의 봉기군을 한데 묶었다. 옛 성곽에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3만 7,000여 명이 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