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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환 (1884년)
    대구 지역유력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07년 일본 오사카 부립 시노노메(東雲)학교를 졸업했고 도지부 서기랑과 재무 감독국주사로 근무했다. 1910년 10월 1일 경상북도 도서기로 임명되었으며 1911년 6월 26일 평안북도 창성군수, 1912년 9월 24일 평안북도 선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다. 1912년 8월 1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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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홍 (1883년)
    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50년 4월 25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지역유력자 부문,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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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재 (언론인)
    신경) 지역 위원을 역임하는 동안 일제의 황민화 교육 정책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10월 30일 결성될 때부터 1940년 12월 20일 해체될 때까지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 만주국의 조선인 유력자들이 일제의 항일 무장 세력 토벌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 상무위원을 역임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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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붕
    지역유력자로 널리 알려졌다. 1919년 4월 3·1 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직된 대구자제단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20년 11월 20일 대구부협의회원으로 재선출되었다. 1924년 4월 1일부터 1926년 5월 3일까지 경상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을 역임했으며 1928년 11월 15일 대구부로부터 대구부정공로표창(大邱府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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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영 (기업인)
    선출되었다. 1942년 5월 15일 조선임전보국단 평안남도지부가 주최하고 매일신보 평남지사의 후원으로 열린 징병제도 실시 대강연회에서 연사로 참여하여 “반도 동포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개최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제 부문, 지역유력자 부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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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병학
    기부하는 한편 일본 제국 육군과 일본 제국 해군에 각각 50,000원(합계 100,000원)을 헌납했다. 1942년 10월 28일 조선군 애국부를 방문한 그의 아들인 조중환(曺重煥)이 국방헌금 50,000원에 대한 헌납수속 절차를 마쳤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제 부문, 지역유력자 부문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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