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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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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82년 서울의 하급 군병과 빈민층이 일으킨 폭동의 결과.

대원군은 정상적인 급료 지급을 약속하고 별기군을 폐지했으며 5군영 체제를 복구시키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 후 폭동은 가라앉았으나 군병들은 소규모 부대로 활동을 계속했다. 대원군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과 청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병력을 이끌고 서울에 온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는 주모자 처벌, 피해 보상, 개항 및 통상의 확대를 비롯한 8개 조항을 요구했다. 서울에 들어온 청군은 대원군 정권과 일본 측을 중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대원군을 청국으로 납치해 가는 한편, 서울 시내와 궁궐을 장악했다. 군병과 서울의 빈민들은 청군에 저항하여 곳곳에서 소규모 전투를 전개했다. 청군은 대원군 세력을 체포·투옥하여 대원군 정권을 무너뜨리는 한편, 군병의 집단적 거주지인 왕십리와 이태원을 공격하여 저항 세력을 진압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작은 배로 탈출한 일본 공사관원

ⓒ Magnus Manske/wikip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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