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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82년 서울의 하급 군병과 빈민층이 일으킨 폭동의 전개 과정.
무위영 소속 훈련도감 군병들은 6월 9일 아침 동별영에 집합하여 무위 대장 이경하와 선혜청 당상 민겸호에게 붙잡아간 사람들을 풀어달라는 등소를 올렸다. 등소가 실패하자 군병들은 민겸호의 집에 불을 지르고 무력 행사에 돌입했다. 동별영 창고를 열어 각종 무기를 꺼내 무장하고 무위영과 장어영의 다른 군병들을 소집했으며, 영세상인·수공업자 등도 군병에 가세했다. 이들은 포도청을 습격해 붙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고 의금부로 가서 죄수들을 풀어주었으며, 별기군 교련장을 습격하고 경기 감영과 일본 공사관을 습격했다. 시간이 갈수록 하급 군병, 빈민들이 가세해 대규모 세력을 형성했다. 10일에는 흥인군 이최응의 집을 습격·살해하고, 명성황후를 공격하기 위해 창덕궁으로 몰려가 민겸호·김보현 등을 살해했다.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잃은 고종은 흥선 대원군에게 정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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