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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인종 때 묘청 등이 주장하여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려 했던 운동.
이자겸의 난이 있은 후 서경 출신의 문신 정지상은 묘청의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에 근거하여 왕기가 있는 서경으로 천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서경천도론을 제기했다. 그는 묘청을 인종에게 천거하여 왕실 고문으로 되게 하였다. 묘청은 서경에 신궁을 짓고 천도하면 천하를 아우르게 되어 금나라가 저절로 와서 항복할 것이며 36국이 모두 신하가 될 것이라며 서경 천도를 건의했다. 이에 인종은 서경에 대화궁이라는 신궁을 짓고 한동안 서경에 머무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 세력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서경 천도 운동이 좌절하게 되었고, 이에 묘청 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묘청의 군대는 1년간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1136년 2월 총공격을 당하고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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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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