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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세기 후반 세잔, 쇠라, 고갱, 고흐와 같은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두루 부르는 이름. 1910년 런던에서 이들의 전시회를 기획했던 영국의 화가, 미술평론가인 로저 프라이가 명명했다. 이들은 색채, 기법 등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야수파와 입체파로 이어져 현대미술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사조를 일반적으로는 '후기인상주의'라고 하지만, 드물게 '탈인상주의'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미술평론가인 로저 프라이(Roger Eliot Fry)가 폴 세잔, 조르주 쇠라,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등 19세기 후반 화가들 및 그들의 작품에 붙인 이름. 로저 프라이는 1910년 이들의 런던 전시회를 기획했던 인물로, 인상파 화가들과 이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이런 명칭을 붙였다.
이중 고흐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인이었으며 대부분이 인상주의 화가로 출발했지만, 제각기 그 양식을 버리고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을 형성했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색채와 빛에 따라 자연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에 기초를 두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순수하고 밝은 색채, 짧은 붓놀림으로 형태의 윤곽을 그리는 기법, 전통적인 주제로부터의 탈피 등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보다 풍부한 표현을 위해 그들의 제한된 목표는 거부했다.
이 화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동시대의 여러 경향들과 현대미술의 기초를 이루었다.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 뒤, 1878년 세잔은 '인상주의를 박물관의 작품처럼 견실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묘사한 스쳐지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풍경과 정물에 기념비적인 영속성과 일관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뛰어나게 묘사한 인상주의 기법을 버리고 자연의 형태에 내재해 있는 구조에 몰두하면서 화면의 형태들을 공간의 깊이와 통일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의 미술은 주로 대상의 구조를 묘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 입체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884년 파리에서 열린 앵데팡당 전에서 쇠라는 인상주의 미술에 비해 구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색채학을 깊이 연구한 그림들을 통해 세잔과 비슷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어른거리는 빛을 나타내기 위하여 단편적인 붓놀림으로 채색하는 인상주의 기법을 그림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인 그는 광학의 법칙을 이용해서 빛을 발하는 화면을 성취하려 했는데, 서로 대비되는 보색의 작은 색점들을 나란히 찍어 멀리서 보면 이 색점들이 서로 혼합되어 나타나게 되는 기법을 고안해냈다. 점묘법이라고 하는 이 극히 이론적인 기법은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그후 신인상주의 회화양식의 기초가 되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도 함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서로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주로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에서 외롭게 그림을 그렸고 1891년 타히티 섬에 거주지를 정한 고갱이나 아를 지방에서 그림을 그린 고흐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갱과 고흐는 둘 다 인상주의의 냉담한 객관주의를 거부하고 보다 개인적·정신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고갱은 1886년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작품전시회를 가진 뒤 '자연주의의 가증스런 오류'를 거부했다.
그는 젊은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와 함께 의식적으로 원시미술의 미학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원시미술에서는 상상력과 관념이 영감의 주요원천이었고 자연의 묘사는 단지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두 미술가는 중세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채식사본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하고 단조로운 색과 굵은 윤곽선, 장식적인 특징들을 모방함으로써 순수한 색과 선이 지니고 있는 표현의 힘을 연구했는데, 특히 고갱은 이국적·감각적인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그와 더불어 살았던 타히티본들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네덜란드의 화가인 반 고흐는 1886년 파리에 도착하자 곧 인상주의의 기법 및 색채를 받아들여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활용했다. 그는 인상주의 기법인 보색의 짧은 붓놀림을 보다 더 과장된 색채의 요동치는 구불구불한 선들로 변형시켜 자연의 풍경에 대한 그의 강렬하고 황홀한 느낌을 전달했다.
툴루즈 로트레크와 오딜롱 르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다지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날카로운 인물 묘사와 장식적인 효과에 관심을 기울인 로트레크는 꾸불꾸불하고도 뚜렷한 윤곽선으로 둘러싼 평면을 인상주의의 선명한 대비색들로 채색했다. 르동의 꽃 그림은 다소 인상주의적인 경향을 띠었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은 선 위주로 묘사되어 있으며 오히려 상징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대체로 후기인상주의는 자연주의적인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20세기초의 2가지 주요미술운동, 즉 색채와 선을 통하여 감응을 불러일으키려 한 야수파와 입체파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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