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1941년 12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일본군의 습격을 분쇄하고 탈출에 성공한 전투. 당시 이들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선을 알리며 공작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호가장 부락에서 잠시 쉬는 중에 밀고로 인해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이에 의용대는 맞서 싸울 것을 결의했고, 수류탄과 총을 앞세워 돌격한 끝에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부상자와 체포자가 생겼지만 이 전투는 조선인들의 의지와 기개를 보여주었던 전투로서 그 의의를 갖는다.
1941년 1월 무정·이유민(李維民)·김창만(金昌萬:韓得志) 등은 중국 산시 성[山西省] 태항 산[太行山]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결성했다. 이어 최창익(崔昌益)·한빈(韓斌) 등 조선민족혁명당과 그 산하 조선의용대에서 빠져나와 옌안[延安]으로 북상한 인사들도 연합회에 가담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점령지역 침투공작과 선전공작에 참여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군 점령지대와 중국 해방구의 중간지대 유격구인 원씨현 호가장 부근에서 조선의용대 대원 30명이 무장선전대를 편성하여 일본군 점령하에 있는 부락민에게 항일선전공작을 수행했다. 공작 후 본대로 돌아가던 중, 호가장 부락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친일파인 구장의 밀고로 이들은 500여 명의 일본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의용대는 결사항전할 것을 결의하고, 대문 밖을 향하여 수류탄을 연속해서 던진 후 대원 전원이 경기관총을 앞세우고 문 밖으로 돌격하여 치열한 육박전 끝에 포위망을 뚫었다. 이때 팔로군이 달려오자, 일본군은 퇴각했다. 이 전투로 대원 박철종(朴喆鍾)·송일봉·이만갑(李萬甲) 등 4명이 전사하고 대장 김세광(金世光)이 부상을 당했으며, 김학철(金學喆)은 부상당한 채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나가사키[長崎]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