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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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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000년 경 통일국가를 이르고 국가 발전을 추진했지만 1918년까지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1568년 영토가 3분할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 투르크 등의 지배 하에 놓였다.
1800년대 초 개혁을 시도했지만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마자르인에게 유리한 법안이 문제되어 민족갈등이 계속되었다. 1956년 발생한 공산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부시위운동은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카다르가 집권하면서 경제·문화 분야에 적극적 자유화 정책을 도입했고, 동유럽 국가들 중 가장 자유스러운 국가가 되었다. 1989년 10월 다당제를 인정하도록 개헌하였고 1990년 5월 새 정부를 구성하면서 공산 통치가 막을 내렸다. 1994년 좌파가 다시 득세했지만 경제안정과 시장경제로의 전환 등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헝가리 서부지역을 판노니아라고 불렀는데, 이곳에는 당시 일리리아인과 켈트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BC 14년에 판노니아는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반면 도나우 강의 동쪽 지역은 로마 제국에 한번도 점령되지 않았으며, 여러 게르만계 부족과 아시아 종족들이 거주했다. 200년 이상 아바르족의 영토였다가 800년경 샤를마뉴 대제에게 정복되었다. 5세기에 유목생활을 하는 핀우고르어를 사용하는 마자르족이 이전의 정착지인 유라시아의 스텝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892년 신성 로마 제국의 아루눌프 황제가 모라비아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마자르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자르인들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아르파드를 군주로 선출한 후 노디올 지방에 정착했다. 마자르인들은 중부 유럽을 약탈하다가 9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약탈행위를 그쳤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아르파드의 손자인 게조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1000년에 즉위한 게조의 아들 이슈트반은 그리스도교 전파와 국가의 발전을 계속 추진했다.

1241년 몽골인들의 침공을 받고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재난을 겪었다.

자민족이 세운 왕조인 아르파드 왕조가 막을 내린 1301년부터 1918년까지 헝가리는 단 1차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14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이 공격을 가해왔으며, 1568년에 이르러 지금의 헝가리 영토는 3개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서쪽의 대상(帶狀)지역인 로열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동쪽의 트란실바니아(대략 지금의 루마니아 북서부)는 1566년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고, 나머지 지역(중앙 평원)은 투르크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의 뒤를 이어 헝가리에 대한 주권을 획득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카를로스 3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재위기간을 제외하고는 투르크인들과 마찬가지로 전제정치를 실시했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마침내 1800년대초에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당시 헝가리 전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던 마자르인 외에 여러 민족들은 마자르인에게 유리한 새로운 법안에 불만을 품었다.

1848년 빈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1년 뒤 로요슈 코슈트의 지휘하에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헝가리에 대한 통치권을 재주장했지만 국력이 쇠퇴하자 헝가리와 타협하고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설립했다. 그러나 민족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는 독립했다. 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오스트리아·폴란드·이탈리아가 모두 헝가리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았는데, 헝가리는 잃어버린 영토의 일부라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에 대항하여 독일에 협력했다.

헝가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소련 점령군은 1920년 설정된 국경선을 재확인하는 1947년 조약의 이행을 확실시하기 위해 계속 헝가리에 주둔했다. 1945년 헝가리 공산주의자들은 친소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으며, 1949년에는 헝가리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6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격렬한 반정부시위운동이 일어났지만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야노슈 카다르가 집권하면서(1956∼88) 헝가리 공산당은 경제·문화 분야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유화 정책을 도입했고, 이에 헝가리는 소련의 동유럽 블럭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자유스러운 국가로 꼽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1989년에는 권력에 대한 독점을 포기하여 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 등의 주변국가와는 달리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국민시위를 피해갔다. 1989년 10월 헝가리의 헌법은 다당제를 인정하도록 수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1990년 봄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한 중도 우익 성향의 헝가리민주포럼(Hungarian Democratic Forum)과 그 연합세력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표방했다.

1990년 5월 헝가리민주포럼이 새 정부를 구성함에 따라 헝가리에서 45년 동안 이어진 공산주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애초 기대와는 달리 20∼30%를 웃도는 높은 인플레이션, 전체인구의 14%에까지 이른 급격한 실업률 증가 등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가운데, 1994년 봄 2번째로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헝가리사회당(Hungarian Socialist Party)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좌파가 다시 득세했다.

의회의 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헝가리사회당은 자유민주연합과 연대해 연립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새 정부는 경제안정과 시장경제로의 전환 등 기존정부의 정책을 계속 추진해갈 것임을 밝혔다.

헝가리안의 침임(Hungarian raids)

10세기 헝가리안의 침입을 나타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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