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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세기 전반기 스페인의 주요건축양식.
(영). Plateresque.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도 사용되었다. 1539년 크리스토발 데 비얄론이 고딕식 레온 대성당을 묘사하면서 이 문학적인 표현을 건축에 연관시켜 처음 사용했다. 후에 이 용어는 특정한 스페인 건축양식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보통 사치스러운 장식효과를 위해 구조적 이음새를 고려하지 않고 주로 건물 표면에 쓰인 육중하면서도 복잡한 장식이 특징이다. 이 화려한 장식에 흔한 모티프는 꼬인 기둥, 문장을 새긴 방패, 물결 치는 소용돌이무늬 등이다. 이러한 보석 같은 장식군은 넓게 펼쳐진 평평한 벽면과 대조를 이루며 배치되었다.
이 양식은 고딕식 건축물과 무데하르 장식,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공간을 종합한 세계주의적인 이사벨 양식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 양식은 눈에 띄게 구별되는 2단계를 거쳤다. 제1단계는 젊은 활력과 표현력이 특징이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레알 병원(1501~11)을 설계한 엔리케 데 에가스와 세비야의 시청사(1527 착공) 설계로 유명한 디에고 데 리아뇨의 건물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 건축적인 장식은 모든 외부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며 규모·구성·배치, 심지어는 적합성조차 고려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자성을 추구하고 있다. 건축가이며 조각가인 디에고 데 실로에(1563 죽음)는 조밀한 덩어리(mass) 부분의 결속을 강화하고 형태나 장식의 조화를 꾀하는 방법으로 풍만한 플라테레스코 양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걸작인 위풍당당한 그라나다 대성당(1528 착공)은 내부공간의 강력한 상징성으로 초기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절정을 이루는 동시에 제2단계를 예고하고 있다.
대략 1540년초에 제2단계가 출현했다. 성기 르네상스의 원칙과 기법의 영향을 받아 이 양식은 더욱 틀이 잡히고 통합되었다. 정확한 고전적 오더[柱式]가 자주 쓰였으며 비구조적인 고딕식 리브[肋材]가 점차 사라지고 이탈리아풍의 기하학적 볼트(둥근 천장)로 대체되었다.
제2단계의 플라테레스코 양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설계한 건축가는 로드리고 힐 데 온타뇬이다. 그가 설계한 살라망카의 몬테레이 궁전과 알칼라데에나레스대학교(1541~53)의 정면은 제2단계 양식의 걸작이다. 그러나 이 양식은 1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1556년 펠리페 2세가 된 근엄한 젊은 청년은 이 양식의 균형미와 정확성까지도 지나치게 호화로운 것으로 보았고 후에 직접 간소한 엘 에스코리알 건축을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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