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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해상과 해저에서 수행되는 군사작전.
군함, 전투용 선박, 그 배에 종사하는 인원을 합쳐 해군이라고 한다.
해군함정은 국가가 군사력을 해상으로 뻗치는 주된 수단이다. 해군함정의 2대 임무는 해상통제와 해상봉쇄이다. 해상을 통제하면 그 나라와 동맹국들이 해상무역과 수륙양면 공격, 그리고 전시에 필요한 그밖의 해상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해상을 봉쇄하면 적국의 상선과 군함들이 그 해역을 안전하게 운항할 수 없게 된다.
역사의 초기에는 한 부족이나 부락의 무장한 남자들이 구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보트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비슷한 장비를 갖춘 적에게 도전하거나 바다로부터 육지를 습격했다(군사기술). 초기의 해전에 이용된 선박들은 처음에는 상선이나 어선이었지만, 나중에는 전투용으로 특별 제작된 배들이 등장했다.
가장 오래된 군함은 많은 노를 갖춘 갤리선(船)이었는데, 이것은 배마다 많은 노잡이가 필요하여 함대를 배치하는 데 상당수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이 노로 움직이는 대형의 갤리선들은 공격력을 수병들이 적선에 뛰어들거나 적선을 들이받는 것에 의지했으며, 이런 배들이 지중해에서 아테네,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제국,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 아랍 국가들, 아라곤 왕국 등의 전시 함대에서 대량으로 이용되었다.
로마 공화국과 로마 제국은 해상의 경쟁세력들로부터 제기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중해에서 횡행하는 해적행위와 그로 인한 통상로의 안전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함대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마의 해군은 2개의 주력 함대를 보유했으며, 특별히 해상 임무를 부여받은 '클라시키'(classici)라는 군단에 의해 항상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해군은 마케도니아 왕조(867~1056)의 군주들 밑에서 능률이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비잔틴의 해군은 제국 함대와 지방의 소함대들로 구성되었다. 12세기에 이르러 투르크의 침공에 의해 비잔틴 제국의 질서가 문란해진 뒤에 비잔틴의 해군은 약화되었다. 중세기에 지중해와 접한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과 군주국들은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보유했다.
지중해상의 해군들이 노로 추진하는 갤리선으로 역사상 마지막 큰 활약을 한 것은 레판토 해전(1571)에서였다. 그후로 해군 활동의 무대가 바뀌었으며, 함정과 함대들이 대양에서의 항해와 전투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6, 17세기에 노에 의한 추진을 돛의 배열로 대체하고 배에 포를 갖춘 것이 장차 수백 년 동안 바다를 누비게 될 군함의 형태를 결정했다. 뱃전에 포를 배치하는 것과 노를 사용하는 것은 양립될 수 없었으며, 범주 기술의 발달에 의해 노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었다. 영국 해군에서 표준 전투함정이 된 것은 뱃전에 주포(主砲)를 배치하고 이물과 고물에 보다 가벼운 경포(輕砲)들을 실은 2, 3층 갑판의 돛배인 갤리언이었다.
1588년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대승을 거두었을 때 동원된 군함이 그런 배들이었다. 스페인의 함대는 신속히 재장전할 수 있는 포가 비교적 적은 크고 느린 배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수병들이 적선에 뛰어들 수 있도록 배를 접근시키는 것을 주된 전법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영국의 승리는 해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승리였다.
즉 영국의 배들은 스페인의 배들에게 접근할 거리를 주지 않고 화력이 우세한 포로 사정없이 포격했던 것이다.
전투 함대의 주축이 될 만큼 강력한 배는 너무 무겁고 비싸고 또 느리기 때문에 빠르게 달리는 무장선을 많이 필요로 하는 해군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적국의 상선을 추격하여 나포하자면 일찍이 순양함으로 알려진 종류의 배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17, 18세기에 군함은 2대 함종(艦種)으로 발전되었다.
함대의 주력 전투 함정은 전열함(戰列艦)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뱃전에 중포(重砲)를 설치하고 선체 내에 적의 포탄이 뚫을 수 없는 무거운 늑재를 댄 2층 갑판선(船)이나 3층 갑판선이었다. 또하나의 주요함종은 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순양함이었으며, 순양함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주력함보다 소구경의 포를 탑재하는 외갑판선인 프리깃이었다. 프리깃과 같지만 보다 작은 것이 코르벳이었고, 그 밑에 통상 쾌속배달선으로 배치되는 슬루프형 포함이 있었다.
뱃전에서 포격을 교환하면서 싸우는 범선 전투방식은 19세기 후반까지 거의 변함없이 유행했다.
그러다가 증기 추진력의 포장과 스크루 프로펠러의 사용에 의해 돛이 쓸모없게 되고, 선체 내의 늑재와 선박의 방호용 외장이 철 피복(나중에는 강 피복)으로 대체되었으며, 폭발성이 높은 유탄을 발사하는 후장식 선조포(旋條砲)가 등장하여 함포의 사정거리와 파괴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기술혁신은 19세기말에 탄착정도(彈着精度)가 극히 높고 강력한 대형의 중거리포를 장비한 중장갑의 쾌속선인 전함의 개발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전함은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바다의 왕자로 군림했지만, 진주만에 정박중인 미국의 군함들에 대한 일본의 공격에 의해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폭격기는 전함을 포함하여 어떠한 수상 함정도 침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후로 항공모함이 세계 각국의 함대에서 단연 최고의 전투함정이 되었다.
현대 전투함정은 3개의 범주로 대별된다. ① 주로 갑판에서 발진하는 항공기를 이용하여 싸우는 배인 항공모함, ② 주로 포나 로켓 추진 미사일로 싸우는 배들인 순양함·구축함·전함, ③ 주로 기뢰·어뢰·폭뢰와 같은 물 속에서 사용하는 무기로 싸우는 배들인 잠수함과 구축함이 그것이다.
핵무기의 개발은 해군력의 역할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열핵무기로 폭격을 당하는 나라는 설사 해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핵전쟁은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라서 그 나라의 해군력은 전통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핵 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의 개발은 해군력의 완전히 새로운 역할인 핵억지 역할을 창출했다. 잠수함은 미국의 '3원'전략 핵전력, 즉 장거리 폭격기, 지상발사 대륙간 탄도탄, 폴라리스·포세이돈·트라이던트와 같은 잠수함 핵전력체제에서 한몫을 한다.
그런 잠수함들은 잠재 침략국이 기습적인 핵공격을 개시하는 것을 저지하는 기본수단이 되었는데, 이는 주로 해저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재 침략국은 핵무기를 장비한 잠수함대로부터 보복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국의 취약한 지상 및 공중 배치 핵전력에 대해 전면적인 선제 공격을 개시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잠수함은 핵억지정책의 최종적인 보증 수단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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