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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98년(고종 34) 1월 26일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전차·전등·전화 사업을 위해 설립된 회사.
고종을 중심으로 한 황실이 단독 출자한 회사로서, 한성 5서(署) 관내에서 위의 사업을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가졌다. 이 회사가 설립되어 사업을 전개한 광무연간(1897~1906)은 열강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져 어느 한 나라도 우리나라에 독점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개항 이후 줄곧 우리나라를 독점하려던 일본의 야욕도 제약을 받고 있었다. 당시 지배층은 이런 기회에 일제의 총칼 앞에 짓밟힌 국가와 황실의 권위를 높이고, 근대적 산업을 일으켜 부강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생각이 퍼져가고 있는 분위기에서 설립되었다.
형식상 대한제국의 회사였지만 실제 운영은 미국인 H. 콜브란과 H. R. 보스윅이 맡았다.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던 전차사업의 경우 철로의 부설 및 전차의 운행을 모두 이들 미국인이 맡았으며, 전등이나 전화사업에서도 비슷했다. 즉 형식상 콜브란과 청부계약을 맺고 사업을 추진하긴 했지만 청부업자의 지위를 벗어나 회사의 운영을 위임받았음은 물론 사업을 위해 자금까지 조달했다. 이것이 결국 이 회사의 소유권이 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빌미가 되었다. 전차 운행에 필요한 선로 부설을 위한 계약은 1898년 2월 1일에 맺어져 콜브란에게 공사비의 일부인 20만 원이 지급되었으며, 콜브란은 다시 일본인에게 설계 및 건설을 맡겼다. 같은 해 10월 17일 공사가 시작되어 12월 25일 완공되었으며, 1899년 5월 17일 정식 개통되었다. 이때 건설된 구간은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에 이르는 약 8㎞의 단선 궤도였으며, 전차 운행구간은 이후 남대문, 일본인들의 초기 근거지인 구용산(지금의 원효로 일대), 마포 등지로 연장되었다. 전등사업의 경우에는 1898년 전등발전소 건립을 위한 계약이 한성전기회사와 콜브란 사이에 맺어졌고, 1903년 제2발전소가 마포에 세워졌다. 전화사업의 경우 별다른 작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1902년 8월 콜브란·보스윅은 한국측이 여태까지의 사업비 150만 원을 지급하지 않으면 회사를 두 사람의 소유로 하여 타인에게 전매한다고 했을 때, 대한제국 황실은 이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두 사람을 회사재산 및 특권의 공동소유자로 인정했다. 1904년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 회사는 미국 법률에 입각하여 미국 회사로 탈바꿈했고, 이름도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로 바뀌었다. 그뒤 이 회사는 본사가 미국으로 이전되고 소유자도 이들로 바뀌었다가 1909년 다시 일본 국책회사인 일한와사회사(日韓瓦斯會社)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한성전기회사는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뚜렷한 계획이나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자신의 재정강화에만 관심을 가졌던 대한제국 황실이 그나마의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중요 이권만 외국에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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