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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38~40년 12월말 중국 류저우[柳州]·충칭[重慶]·시안[西安] 일대에서 활동한 한국청년들의 초모공작대(招募工作隊). 기관지 <한국청년>을 발행했으며, 1941년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된 이후 광복군 징모사업에 주력했다. 1942년 광복군 제2지대로 개편되었다.
한국청년전지복무대라고도 한다.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내륙지방을 침공함에 따라, 조선혁명자연맹의 나월환(羅月煥)·김동수(金東洙)·박기성(朴基成) 등이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해서 한국청년을 선발하여 항일부대를 편성했다. 시안을 본거지로 하여 일본군의 기밀탐지, 일본군 내에 있는 한적사병(韓籍士兵)을 초모하여 선무공작 등을 했으며, 기관지로 〈한국청년〉을 발간했다.
공작대원은 30~40명으로, 이중에는 중국중앙군관학교 출신도 10여 명 포함되어 있었다. 간부는 대장 나월환, 부대장 김동수, 군사조장 박기성, 정훈조장 이하유, 예술조장 한유한, 공작조장 이재현 등이었다. 한편 1940년 9월 17일 충칭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한국광복군성립전례식을 거행하고 한국광복군 군사특파단을 시안에 파견하여 전지공작을 실시하자, 1941년 1월 1일 대장 나월환이 전대원과 함께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다.
편입 후 전대원은 중국 전시간부 훈련반에서 1년간 훈련을 받고, 뤄양[洛陽]·정저우[鄭州] 등지에서 광복군 징모(徵募) 5분처로, 일본군 내 한적사병을 초모하는 광복군 징모사업에 주력했다. 1942년 3월 지대장 나월환이 부하에게 살해되자, 훈련대장 송호성(宋虎聲)이 지대장이 되었다. 1942년 5월 광복군 제2지대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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