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으나, 좌익미술가들이 좌파 성향의 단체를 결성하여 분리하자 정치 불간섭과 엄정중립을 표방하며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가 한국미술협회의 모태이다. 정부수립 후 대한미술협회로 개칭되었고, 1955년 이른바 홍익대학파와 서울대학파의 대립으로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로 나뉘었다. 1961년 민속미술의 발전 도모와 미술가 권익 옹호, 국제교류와 미술가 상호간의 협조를 표방하며 두 단체는 한국미술협회로 통합했다. 1985년 민족민중미술을 지향하는 미술가들이 민족미술협의회를 만들어 진보적 미술운동을 펼치자 한국미술협회는 보수 성향을 더욱 굳혔다. 주요 사업으로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디자인·공예·구상·서예·문인화·비구상 부문과 한국미술협회전 등이 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으나, 좌익미술가들이 좌파 성향의 단체를 결성, 분리하자 정치 불간섭과 엄정중립을 표방하며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가 한국미술협회의 모태이다. 정부수립 후 대한미술협회로 개칭되었고, 1955년 위원장 선거를 치르면서 이른바 홍익대학파와 서울대학파의 대립으로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로 나뉘었다. 한국 미술계의 학맥과 인맥으로 인한 갈등은 이때부터 표면화되었다.
1961년 민속미술의 발전 도모와 미술가 권익 옹호, 국제교류와 미술가 상호간의 협조를 표방하며 두 단체는 초대 이사장에 박득순을 선출, 한국미술협회로 통합했으나 통합 직후부터 줄곧 내부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1962년 국제조형예술협의회(IAA)에 가입해 세계 미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으며, 1963년 상파울로·파리 비엔날레, 1967년 도쿄[東京] 비엔날레, 1969년 카뉴 비엔날레 등 해외 미술제에 참여하여 미술의 국제적 조류를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한국미술협회전 외에도 1972년 앵데팡당 전을 열기 시작하면서 다양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1985년 민족민중미술을 지향하는 미술가들이 민족미술협의회를 만들어 진보적 미술운동을 펼치자 한국미술협회는 보수성향을 더욱 굳혔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이관받고 1989년부터 주최했으나 미술인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위상은 민족미술협의회와의 대립적 상황으로 퇴색되었다. 국가 차원의 전람회인 대한민국미술대전·대한민국공예대전(1987~)·대한민국서예대전(1989~)을 운영하고 있으며, 1992년 서울에서 IAA 총회를 개최했다. 1995년 구 조선총독부 철거 가림막 설치미술에 참여했으며, 해마다 대한민국원로작가초대전·청년작가초대전·아름다운 서울 그림전 등을 개최한다.
한국미술협회가 추진하는 주요사업으로는 회원 권익옹호 및 친목도모에 관한 사업, 창작활동 관련 사업, 국제미술 문화교류에 관한 사업, 출판 및 계몽에 관한 사업, 기타 미술문화 발전을 위한 사업이 있다. 동양화·서양화·조각·공예·서예·판화·평론·디자인 등 12개 분과, 전국 93개 지부로 구성되며 2000년 현재 1만 2,067명이 회원으로 있다. 소식지 〈미협지〉를 발간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미술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