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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즈

다른 표기 언어 al-Hall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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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858경, 이란 투르
사망 922. 3. 26, 바그다드
국적 이슬람

요약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의 사표, 작가.
정식 이름은 Abū al-Mughīth al-Ḥusayn ibn Manṣūr al-Ḥallāj.

일부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찬양받고, 다른 일부에게서는 억압당하면서, 인품과 작품을 통해 많은 이슬람교도들의 경험·대의·열망을 대변했기 때문에 그의 극적인 삶과 죽음은 이슬람 역사에서 꼭 언급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되어왔다.

알 할라즈는 이란 남부 파르스 지방에 있는 투르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는 조로아스터교도였고 마호메트의 교우였던 아부 아이유브의 후손이었다. 어렸을 때 직물·무역 및 아랍 문화권의 중요한 중심지인 이라크의 와시트 시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이슬람교도로 개종하여 양털을 소모(梳毛)하는 것으로 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알 할라즈는 어린 나이에 금욕주의적 생활 방식에 매료되었다. 〈코란〉을 암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더욱 심오하고 내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이슬람 신비주의의 태동기에 청년시절(874경~894)을 보낸 그는 속세를 떠나 은둔하면서, 자신을 수피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저명 인사들을 찾아다녔다.

그의 스승이 된 살 앗 투스타리, 암르 이븐 우스만 알 마키, 아부 알 카심 알 주나이드는 수피주의의 대가들에게 매우 존경받았다. 처음에는 후지스탄의 투스타르 시에서 조용한 은둔생활을 하던 살 앗 투스타리 문하에서 수학했지만 나중에는 바스라의 알 마키의 제자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수피인 아부 야쿠브 알 아크타의 딸과 결혼했다.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바그다드의 알 주나이드 문하에서 신비주의 교리의 가르침을 터득했는데 알 주나이드 문하에서는 알 마키도 이미 동일한 방법으로 공부했었다.

895경~910경의 기간 동안, 알 할라즈는 설교·교수생활·집필활동을 하면서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 메카 성지순례를 하고 그곳에서 1년간 엄격한 규율을 준수했다. 파르스·후지스탄·호라산 지역 등지를 다니면서 신과 친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 설교하고 글을 썼다.

여행 도중에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는데 그중 일부는 제2차 메카 성지순례에 알 할라즈를 수행했다. 그후 바그다드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곧 해상을 통해 아직 이슬람이 전파되지 않은 인도와 투르키스탄까지 전도여행을 떠났다. 제3차 메카 성지순례를 마치고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왔다(908경). 알 할라즈가 설교하고 집필했던 지역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종교적으로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그는 말년에 구속되었다. 그의 사상과 행동은 선동적이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었고 그중 일부는 정부 및 종교 당국의 의혹을 샀다.

수피 운동은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으며 그 사상과 관행은 아직까지 법학·신학·철학의 발전과 조화시켜야 할 과제이다.

알 할라즈의 여행 성향과 심오한 신비 체험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과 기꺼이 공유하려는 그의 태도를 그의 수피 스승들은 규율위반으로 간주했다. 선교를 목적으로 여행한 일이 카르마트 추종자들의 국가 전복 활동의 혐의를 받은 것이었다. 카라미타파는 이스마일리야의 한 분파로 9세기 테러 활동과 전도사업으로 중앙정부의 권위를 위협했던 함단 카르마트가 이라크에서 창설한 정치운동이었다.

또 아내의 식구를 통해서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파괴적인 잔지 반란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의심도 받았다. 잔지 반란은 억압받던 흑인 노예들이 외부의 불만세력들의 사주와 지도를 받아 일으킨 반란이었다. 그는 바그다드로 돌아오던 중 정치적·도덕적 개혁을 위한 반란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으로 구속되었고 이 사실은 정치 지도자에게 그의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알 할라즈는 '차분한' 수피주의자와 정반대로 '도취된' 수피주의자로 분류되었다(엑스터시). 후자는 무아경의 순간에 신의 출현에 압도되어 자아의식을 상실하며 궁극적인 실체와의 합일을 경험하는 수피들이다.

이러한 흥분된 상태에서 수피는 터무니없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체포되기 얼마전 알 할라즈는 "나는 진실, 즉 신이다"(Anā al-ḥaqq)라는 말을 중얼거렸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그가 신이라고 주장했다는 고발의 이유가 되었다. 그와 같은 말은 대부분의 이슬람교도들의 견지에서 볼 때 대단히 온당치 못한 것이었다. 나아가 그것은 카르마트 신봉자와 잔지 노예들의 지지자들과 관계를 가진 일종의 신지학적인 사상이었다. 그렇지만 알 할라즈 사건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고 오랫동안 세인의 관심을 끈 재판절차는 무판결로 끝났다.

수스에서 체포되고 바그다드에서 오랫동안 구금되었다가(911경~922) 알 할라즈는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잔인하게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많은 군중이 그의 처형을 지켜보았다. 그는 끔찍한 고문을 조용히 또 용기 있게 견디어내면서 자신을 고발한 자들을 위해 용서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할라즈가 죽은 후 그의 저서가 존경을 받고 그의 가르침과 경험을 용감하게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사건은 이슬람 공동체(ummah)가 스스로 재판대에 올랐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후의 이슬람 역사에서 알 할라즈의 생애와 사상은 무시될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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