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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5. 12. 31(구력 12. 19), 러시아 프스코프 근처 토로페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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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5. 4. 7, 모스크바 |
국적 | 러시아 |
요약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
본명은 Vasily Ivanovich Belavin.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새 소비에트 정부의 반교회 입법에 날카롭게 저항하면서, 본래 교회에서 이탈해나가 정부가 지원하는 정치지향적인 성직자 집단('살아 있는 교회'로 알려짐)에 협조하기를 거부했으나, 후에는 정부의 탄압을 줄여보려고 교회와 국가의 여러 관계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으며, 확고하게 교회를 운영해 교회가 견딜 수 있는 상황을 마련했다.
러시아 정교회 사제의 아들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891년 수사가 된 뒤 정교회 전통에 따라 티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교회에서 빠른 출세 가도를 달려, 교수 생활을 마친 뒤 1897년 루블린(지금의 폴란드) 주교, 1898년 알래스카 주교가 되었으며, 1905~07년에는 북아메리카 정교회 주교로서 뉴욕 시에 머물렀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교회권력을 분산시키고 정교회 신학교들을 많이 세웠으며, 정교회 전례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도움으로써 러시아 정교회의 구조와 예배의식을 지역문화 환경에 맞추어 개정했다.
1907년 러시아로 돌아와 모스크바 근처 야로슬라블의 주교가 되었고 1917년 정교회를 재조직했으며, 1721년에는 차르 표트르 1세의 탄압으로 없어진 총대주교직을 되살리기 위해 열린 러시아 교회 총공의회에서 모스크바 수도대주교 겸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1917년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한 뒤 정교회의 토지재산을 모두 국유화하고, 정교회가 운영하는 모든 학교와 신학교를 인수하여 교회에 주던 모든 국가보조금을 중단하고 오직 세속 결혼식만을 허용했다. 1918년 정교회와 국가는 서로 완전히 등을 돌렸고, 교회는 이제까지 누려오던 법적인 권리들을 박탈당하면서 지역마다 사제들이 습격당하고 교회 재산이 노략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총대주교로서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도덕적인 권위를 행사하던 티혼은 처음에는 소비에트 정부의 행위를 단죄했으나, 1918~22년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1921~22년 심한 가뭄이 발생한 상황에서 정부가 또다시 교회 재산을 몰수한 데 대해 완강히 반대했고, 이민한 성직자들과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아 모스크바 근교의 수도원에 감금당했으나 재판에 회부되지는 않았는데, 아마 영국의 정치적인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교회' 운동이 민중과 정부 모두에게 지지받지 못하자 1923년 6월에 풀려나 소비에트 체제의 적법성을 승인하고 혁명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들을 단죄한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한 뒤 제한된 행정활동을 허가받았다. 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심한 정치적 박해 가운데서 '살아 있는 교회'파의 잔존세력들이 일으킨 내분을 해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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