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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0년 9월 13일, 미국 미주리 래클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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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8년 7월 15일, 워싱턴 D. C.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육군 장성.
별칭은 Black Jack.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 파견된 미원정군(AEF)을 지휘했다. 1886년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차례의 인디언 전쟁과 미국-스페인 전쟁(1898)에 참전했고, 1906~13년 육군 준장으로 필리핀 제도에서 복무했으며, 1916년에는 멕시코의 혁명가 판초 빌라를 응징하기 위한 습격을 지휘했다. 링컨에 있는 네브래스카대학교와 웨스트포인트에서 군사교관을 지내기도 했다.
1917년 4월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유럽에 파병할 미군 사령관으로 퍼싱을 선임했다. 퍼싱은 6월에 전체 병력을 1918년까지 100만 명으로, 1919년까지 300만 명으로 늘릴 것을 건의하는 '전군 편제에 관한 보고서'(General Organization Report)를 제출했다. 애초의 미국의 계획은 그런 대군을 전제로 하지 않았지만 퍼싱의 건의는 주효했다.
연합군의 고위 사령부는 1917년의 패퇴로 많이 와해된 유럽군 사단들의 보충대로 미군을 활용하려 했지만 퍼싱은 독립군으로서 AEF의 순수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퍼싱은 연합군 측의 압력을 대부분 물리쳤지만, 1918년 3~6월의 독일군의 파리 공격중에는 그의 부대를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원수 휘하에 임시로 보내는 데 동의했다. 퍼싱의 군대는 완전히 독자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2차례 중요한 작전을 수행했다.
1918년 9월 AEF는 독일군의 생미엘 전초기지를 공격하여 함락하는 데 성공했고, 9월말에 퍼싱은 포크의 요청에 따라 메츠로 진격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뫼즈-아르곤 공세를 위해 신속히 그의 부대를 재집결시켰다. 불충분한 준비와 경험 부족으로 작전이 지연되었지만, 프랑스에서의 연합군의 합동공세로 10월초 독일군의 저항을 분쇄하고 11월에 휴전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퍼싱은 작전과 병참에 있어서의 실수로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AEF 창설은 뛰어난 업적이었다. 그는 명성을 얻고 귀국하여 1919년 미국 육군 대장으로 승진되었다. '블랙 잭'이라는 그의 별명은 군대생활 초기에 흑인 연대에서 복무한 전력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그의 완강한 태도와 엄격한 훈련을 의미한다.
정계로부터의 유혹을 피하여 군대에 머물면서 1921년부터 참모장을 지내다가 3년 후에 퇴역했다. 2권으로 된 그의 회고록 〈나의 세계대전 체험 My Experiences in the World War〉이 1931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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