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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1. 7. 5, 미국 테네시 낙스빌 근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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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0. 8. 14, 뉴헴프셔 포츠머스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제독.
남북전쟁(1861~65) 때 북군 해군을 이끌고 여러 차례 두드러진 승리를 거둠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어린시절에 뉴올리언스에서 데이비드 포터 해군대령(후의 준장)의 양자가 되어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1812년 미·영 전쟁 때 포터가 이끄는 프리깃함 '에식스호'에서 복무했다. 에식스호는 여러 척의 영국 포경선을 나포했는데, 패러것은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이런 포획선 가운데 하나를 지휘했고 20세에는 숙련된 장교가 되었다. 1823년에는 소함대에서 포터 밑에서 복무하면서 카리브 해의 해적을 진압하는 일을 했다. 1824년 '페릿호'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지휘권을 얻었다.
수년 동안 일상적인 업무를 하다가 1861년 12월 멕시코 만 서부지역에서 북군 봉쇄함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그는 미시시피 강으로 들어가 남군이 주로 전쟁물자를 공급받고 있던 뉴올리언스를 함락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육군부는 그에게 뉴올리언스 시에서 떨어진 하류지역의 요새 2곳을 박격포로 공격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대담하게 대포공격을 퍼붓고 요새 뒤로 도망치는 독자적인 계획을 세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1862. 4. 24).
그의 해군은 요새에서 상류 쪽에 정박하고 있던 남군의 소함대 대부분을 괴멸시켰다. 북군 수송부대는 패러것의 후원포격 덕분에 상륙할 수 있었고 요새와 뉴올리언스 시는 함락되었다. 이듬해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미시시피에 있는 빅스버그를 향해 진격했을 때 패러것은 레드 강 하류의 허드슨 요새에서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남군의 수비부대를 뚫고 그랜트를 원조했으며, 강의 지류 아래쪽의 남군 수송을 차단했다. 빅스버그는 1863년 7월에 함락되었고 북군은 곧 미시시피 강 전지역을 장악했다.
그후 패러것은 앨라배마에 있는 모빌 만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곳은 요새 몇 개가 방어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요새는 모건 요새였다. 모빌 만에는 한쪽에 어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건 요새에 접근하려면 만의 다른 쪽 통로를 이용해야 했다. 남군의 장갑함 '테네시호' 역시 모빌 만에 정박하고 있었다. 패러것이 이끄는 부대는 무장한 모니터함을 선두로 하고 목선 프리깃 함대가 그뒤를 따르게 하여 2열종대로 모빌 만에 들어갔다(1864. 8. 5).
그러나 선두 모니터함인 '테쿰세호'가 어뢰에 의해 파괴되자 목선의 선봉에 서 있던 '브루클린호' 역시 놀라서 진격하지 못했고 나머지 전함은 모건 요새의 포격에 당황해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패배가 임박한 듯이 보였을 때 패러것은 머뭇거리고 있던 브루클린호를 향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외쳤다. "빌어먹을 어뢰, 전속력으로 진격하라." 그는 자신의 배 '하트퍼드호'를 앞세워 무사히 어뢰를 통과했고 나머지 배들도 그뒤를 따라 진격해 요새에 상륙했다. 요새에 피해 있던 테네시호가 나타나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으나 테네시호는 계속 후퇴하다가 결국 항복했다. 남군의 요새들은 이제 고립되어 차례차례 항복했고 마지막으로 모건 요새가 항복했다.
이 싸움은 패러것의 경력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나 그는 건강이 나빠져 더이상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는 1862년 소장, 1864년 중장이 되었고 1866년 제독의 자리에 올랐다. 1877년 유럽으로 가서 강대국들의 해항을 공식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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