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363경, 아나톨리아 갈라티아 |
---|---|
사망 | 431이전, 아스푸나 |
국적 | 갈라티아 |
요약 갈라티아의 수사·주교·연대기작가.
그의 〈수도원 새벽기도 이야기 Lausiac History〉는 초기 이집트와 중동의 그리스도교 수도원 제도를 기록한 것으로, 그리스도교 금욕주의에 대한 가장 귀중하고 유일한 자료이다.
스스로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하여 처음에는 예루살렘 밖의 그리스도 수난 장소인 올리브 산에서, 다음에는 이집트의 니트리아 사막(지금의 와디안나트룬)에서 지내면서 4세기의 선구적인 수사 마카리우스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건강이 나빠져 399년경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헬레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 근처)의 주교가 되었다. 400년 이후에는 그의 논리정연한 신학 스승이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가 이단혐의를 받게 되자 그를 폭넓게 옹호했다.
경쟁 신학파인 알렉산드리아 및 이집트 학파와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에 있는 적들은 크리소스토무스의 도덕적 권고를 듣고 당황했고, 그의 직책을 시기했으며 그가 교리적 오류를 범했다고 기소했다. 팔라디우스가 비잔티움과 로마에서 크리소스토무스를 지지한 데 대해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는 6년 동안 팔라디우스를 추방했다. 이 시기 동안(408경) 그는 〈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생애에 관한 대화 Dialogue on the Life of St. John Chrysostom〉를 저술했다. 플라톤의 〈파이돈 Phaedo〉의 양식을 따라 저술한 이 책은 정치적·신학적 논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413년 추방령이 해제된 후 팔라디우스는 갈라티아에 있는 아스푸나의 주교가 되었다. 419~420년 〈하느님의 친구들의 생애 The Lives of the Friends of God〉에 관한 연대기를 구성했는데, 이것은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여러 광야에 흩어져 살던 초기 그리스도교 금욕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시종인 라우수스에게 헌정한 〈수도원 새벽기도 이야기〉는 개인적 경험과 사막 수도원운동에 대한 부수적 설명을 융합한 것이다.
때때로 그리스 고전의 영웅적 서사시라는 형태를 모방한 전설적 이야기들을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팔라디우스는 수도원의 허구에 대한 그의 반응("이성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자만심으로 물을 마시는 것보다 낫다")에 나타난 것처럼 경건한 금욕주의 이론을 멀리하고 참된 휴머니즘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전 시대에는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인도의 금욕주의적 이상에 대한 논문의 일부뿐만 아니라 〈수도원 새벽기도 이야기〉의 신빙성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