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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다른 표기 언어 Joint Security Area , 共同警備區域 동의어 JSA, 판문점

요약 6·25전쟁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공동경비구역.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속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러 사건들로 인해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북측 지역의 판문각과 UN군측의 자유의 집은 각종 회담 장소로 활용되어 옴으로써 한국 민족에게 분단의 상징이면서 남북한 직접 대화 및 교류의 장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공동경비구역 내 평화의집에서 개최되었고, 5월 26일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통일각에서 개최되었다.

개설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약칭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또는 판문점이라 부른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국제연합군측과 북한·중국의 공산측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경계이다. 서울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속한다.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50㎞, 개성 동쪽으로 약 8㎞, 북위 38°선의 남쪽 5㎞ 지점에 있다. 수리적 위치는 북위 37°57' 200″, 동경 126°40′40″이다.

유래 및 역사

본래 지명은 널문리였는데, 1951년 휴전회담이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중국어 표기를 위해 판문점으로 고쳐쓰면서 지명으로 굳어졌다. 6·25전쟁중 휴전회담이 열렸으며 오랫동안 남북한 분단의 상징이었다. 6·25전쟁 전에는 초가 몇 채뿐이 없던 한촌이었으나,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휴전회담은 처음 1951년 7월 개성에서 본회담을 시작했지만, 중립지대로 결정된 회담장소가 양측의 공방전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그해 9월 6일 판문점으로 장소를 옮겼다. 1953년 7월 27일 이곳에서 북한·중국과 국제연합(UN)군 간에 전문 5조 36항으로 된 한국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개전 후 3년, 회담시작 후 2년 1개월 만에 6·25전쟁은 휴전상태로 끝을 맺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곳은 UN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정해졌다. 그해 8월부터 9월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은 지난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진 후 1967년의 '이수근위장귀순사건', 1976년의 '판문점도끼만행사건' 등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세계적인 긴장완화 추세로 한반도에도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판문점은 남북간 접촉 및 회담의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특히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남북공동성명이 이곳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판문점 내의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실은 실무접촉과 예비회담 장소로 북측 지역의 판문각과 UN군측의 자유의 집은 본회담 장소로 활용되어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의 적십자회담 외에도 경제회담, 국회회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단일 팀 구성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리고 1985년 9월 20일부터 4일 동안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진 '이산가족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공연'은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한 민간차원의 왕래로 기록되었다. 1988년부터 재야단체와 학생들에 의해 통일논의의 시작되었으며 곧 민간차원에서도 활기를 띄었다. 그해 8월 그동안 중단되었던 '남북국회회담'이 재개되었는데 예비접촉부터 시작하여 10여 차례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렸다.

1990년에는 남북한 직접대화의 길이 열려 남북고위급 예비회담이 열렸으며, 이후 남북고위급회담에 참가한 대표들은 이곳을 통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돌아오기도 했다. 남북한간에는 휴전위반사례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고, 각종 회담과 교류가 부쩍 늘고 있다. 그리고 판문점 지역 남방 한계선 1㎞ 미군 경비구역이 국군에 이관되는 등 최근 판문점은 한국 민족에게 분단의 상징이기보다는 남북한 직접 대화 및 교류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7년 11월 13일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북한군 오청성 병사가 북한군의 총격을 뚫고 귀순해 화제가 되면서 공동경비구역은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시점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더욱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7년 7월 베를린 구상을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평화 교류의 물꼬를 트고, 4월 남북정상회담이 결정되면서 공동경비구역은 중요한 회담 장소로 떠올랐고, 마침내 4월 27일 구역 내의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어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실무형 정상회담이 통일각에서 개최되었다.

주요 시설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은 전후좌우 경계간의 직선거리가 800m에 불과하나 이곳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해 UN측의 '평화의 집', 북측의 '통일각'과 ‘판문각’ 등 24개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자유의 집 2층에는 지난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의 합의에 따라 대한적십자사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 사무소에는 북한과의 직통전화가 가설되어 있으며 2명이 상주하고 있다. 또한 서쪽의 사천에는 민족분단의 상징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옛 이름은 널문다리)가 놓여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1976년 8월 판문점도끼만행사건 이후 폐쇄되어 활용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 구축한 다리인 ‘72시간 다리’도 있다. 이 다리의 명칭은 다리를 건설하는 데 72시간이 소요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판문점

판문점의 모습

ⓒ wikim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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