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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

다른 표기 언어 Ambroise Pa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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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10년, 프랑스 부르크에르상
사망 1590년 12월 20일,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의사.

파레(Ambroise Paré)

ⓒ William Holl/wikipedia | Public Domain

일부 의학사학자들에 의해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 중 한 사람이다.

1533년경 파레는 파리로 가서 호텔 듀이에서 이발외과의사(외과의사와 치과의사를 겸한 옛날의 이발사) 견습생이 되었다.

그는 해부학과 외과학을 배웠고 1537년 군의로 채용되었다. 인기가 매우 높아져 왕의 주치의가 되었으며, 앙리 2세,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등 4명의 프랑스 군주를 섬겼다. 파레가 군대에 들어갈 당시 외과의사들은 총상에는 독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끓는 기름으로 총상을 치료했다. 어느날 파레는 기름이 떨어지자 총상을 달걀 노른자, 장미기름, 테레빈유 등을 섞어 치료했다. 그는 이 혼합물로 치료한 상처가 끓는 기름으로 치료했을 때보다 잘 낫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 뒤 그는 그가 발견한 것을 〈화승총이나 기타 총으로 인한 상처치료법 La Méthod de traicter les playes faites par les arquebuses et aultres bastons à feu〉(1545)이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썼는데, 이 보고서는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씌어졌기 때문에 비웃음을 샀다. 의학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은 파레의 기술혁신 중에는 절단하는 동안 출혈을 억제하기 위해 뜨거운 다리미로 혈관을 태우는 방법 대신 대동맥을 묶는 방법을 다시 도입한 것 등이 있다. 당시의 대부분 외과의사와는 달리 파레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외과술을 사용했다. 그는 탈장치료를 위해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거세시키는 시술을 하지 않은 최초의 외과의사 중 하나였다. 그는 이의 이식, 인공 수족, 금·은으로 만든 의안 등을 도입했다. 그는 많은 과학적 도구를 발명했으며 탈장에 탈장대를 사용하는 것을 대중화시켰고, 처음으로 동맥꽈리(혈관의 부종)의 원인이 매독일 것이라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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