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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전설은 그리스·라틴 문학에서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가장 초기의 문학적 증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Odyssey〉에서 주요 이야기는 이미 골격을 갖추고 있다. 〈일리아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일부는 분실된 연작시가 〈키프리아 Cypria〉·〈아이티오피스 Aethiopis〉·〈소(小) 일리아스 Little Iliad〉·〈일리오스의 약탈 Sack of Ilios〉에서 나타났으며 개개의 주제들이 나중에, 특히 그리스 희곡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트로이 출신의 용사 아이네아스 이야기는 로마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 Aeneid〉의 제2권에는 트로이 약탈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이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딕티스 크레텐시스와 다레스 프리기우스라는 이름의 작가들이 쓴 것으로 통용되는 의사(擬似) 연대기들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테우크로이와 다르다노이라는 이름들이 대체로 '트로이인들'과 같은 말로 사용된다.
그래서 전설은 스카만데르 강의 아들 테우크로스를 트로아스의 첫번째 왕으로 만들었고, 제우스와 엘렉트라(아틀라스의 일곱 딸인 플레이아데스 중의 한 사람)의 아들인 다르다노스를 그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삼았다. 다르다노스의 아들 에릭토니오스는 트로스의 아버지이며, 트로이인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 트로스에게는 일로스·아사라코스·가니메데스(이다 산에서 제우스에게 납치됨) 등 3형제가 있었다. 일로스는 얼룩소가 알려준 지점에 일리움(트로이)을 건설했으나 이 도시는 그의 아들 라오메돈이 승계했을 당시에 아직 성벽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라오메돈은 성벽을 쌓기 위해 포세이돈과 아폴론 신을 고용했으나 그들이 성벽을 다 쌓은 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포세이돈은 트로이를 괴롭히기 위해 바다괴물을 보냈으며 헤라클레스는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괴물로부터 구출해냈다. 그러나 라오메돈은 헤라클레스에게 약속했었던 말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와 그의 동료들이 트로이를 약탈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살해했다.
이때 막내아들 프리아모스만이 헤시오네가 지불한 보상금으로 석방되었다.
부유하고 강한 왕인 프리아모스는 아내 헤카베와 첩들 사이에서 50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파리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를 위한 것이라고 표시해놓은 황금사과를 놓고 아프로디테·헤라·아테나 중에서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심판하도록 요구받았다.
아프로디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고 그리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만난 뒤 사랑에 빠져 그녀와 도주하고 말았다. 헬레네를 찾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르고스·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총 지휘하에 대원정을 시작했다(트로이 전쟁). 트로이인들은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거절했다.
트로아스 내부와 근처의 작은 도시들이 그리스인에 의해 약탈당했으나 트로이는 소아시아와 트라키아 동맹군의 지원을 받아 10년 동안 포위공격을 견디어냈다. 신들 역시 편이 갈라져서 특히 헤라·아테나·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을, 아프로디테(아사라코스의 손자인 트로이 용사 안키세스와의 사이에 아들 아이네아스를 두었음)·아폴론·아레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다. 전쟁 10년째에 시작된 이야기인 〈일리아스〉는 아가멤논과 그리스의 가장 훌륭한 용사 아킬레우스 사이의 반목과, 그로 인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와 프리아모스의 장자 헥토르의 전사를 기록하고 있다.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두 외국 동맹군인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아와 에티오피아의 왕이자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트로이 편에 가세했다.
아킬레우스가 이들 두 사람을 모두 죽였으나 파리스가 화살로 아킬레우스를 살해했다.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전에 그리스인들은 성채로부터 팔라스 아테나의 목조상(팔라디움)을 훔치고, 렘노스로부터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병든 궁수 필록테테스를, 또 스키로스로부터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피로스)를 데려와야 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모두 성공적으로 해치웠다.
마침내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에페이오스가 거대한 목마를 완성했다(트로이의 목마). 여러 명의 그리스 용사들이 목마 안에 숨고, 나머지는 포위공격을 포기한 척하면서 근처의 섬 테네도스로 빠져나갔다.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탈주자임을 가장한 그리스인 시논의 말만을 믿고 그 목마를 아테나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트로이 성벽 안으로 가져왔다.
그 목마를 파괴하려고 애썼던 라오콘 신관(神官)은 바다뱀에게 죽음을 당했다. 밤이 되자 그리스인 함대가 돌아왔고 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의 성문을 열었다. 뒤이은 철저한 약탈에서 프리아모스와 남아 있던 그의 아들들이 살해당했고, 트로이 여자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로 가서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스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위험하고 종종 비참하기까지 했던 항해여행은 2개의 서사시 〈귀향 Nostoi〉과 〈오디세이아〉에 그려져 있다.
엘렉트라는 자신의 후손에 대한 슬픔 때문에 플레이아데스 성단 중 자신의 별을 가장 희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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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그리스·로마의 트로이 전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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