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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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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이집트 |
요약 이집트 제18왕조의 왕(BC 1482경~1479 재위).
이집트의 영토 누비아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고 베두인족을 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징벌대를 파견했다.
선왕인 투트모세 1세와 왕비의 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왕위계승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순수 왕손인 이복누이 하트솁수트와 결혼했다.
재위 1년에 만들어진 아스완 비문에 의하면 나일 강 제2폭포 주변 쿠시 북부의 족장이 이집트의 종주권에 대항해 반란을 조장하고 누비아에 주둔해 있는 수비군을 위협했다고 한다. 투트모세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남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과 함께 군대를 파견했다.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온 족장의 아들 중 1명은 이집트에 동화되어 속왕으로서 자기 나라로 돌아간 듯하다. 아버지를 따라왔던 한 군인의 전기에 나타난 것처럼 그뒤 얼마 되지 않아 투트모세 2세는 팔레스타인 남부의 베두인족을 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이들 자료 이외에 그의 재위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몇몇 상(上)이집트와 누비아 기념비에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으나 이것은 아들 투트모세 3세의 명령으로 새겨진 듯하다. 투트모세는 테베 서부에 조그만 장례 신전을 지었으며 이 신전은 나중에 아들이 확장했다. 왕실 귀중품 은닉처에 그의 미라가 재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그의 무덤이라고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없다.
후궁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투트모세 2세가 죽을 당시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투트모세의 수석 건축사가 지적한 것처럼 어린 왕자가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이집트를 통치한 것은 그의 의붓어머니이자 섭정이었던 하트솁수트였다. 투트모세의 재위기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00년경에 한 학자가 재위 18년이라고 적힌 비문을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재위 첫해만이 확실히 증명되어 있다. 그 학자가 보았다는 자료는 그뒤 다시 발견할 수 없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진위를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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