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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82년(고종 19) 12월 내정사무 일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
1880년 외교·군사 관계 전반의 업무를 맡아보기 위해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이 1882년 6월 임오군란과 대원군의 재집권으로 폐지되었으나, 7월 대원군이 실각하자 기무처로 복설되었다. 이어 청이 파견한 독일인 고문인 묄렌도르프에 의해 외교와 내정 업무를 분리·전담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1월 내정 일체를 담당할 통리내무아문이 외교 일체의 사무를 보기 위한 통리아문과 함께 기무처에서 분설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통리아문이 외아문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통리내무아문은 내아문인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칭되었다. 실무 부서로 이용사(理用司)·군무사·감공사·전선사·농상사·장내사·농상사의 7사를 두었다.
관원 구성은 책임자인 총리에 홍순목(洪淳穆)·김병국(金炳國), 독판에 민태호·윤자덕(尹滋德)·김병시(金炳始)·김유연(金有淵), 협판에 김윤식(金允植), 참의에 홍영식·어윤중(魚允中)·신기선(申箕善) 등이었다. 대원군이 복설했던 5영군문을 혁파하고, 청의 군제를 참조한 좌·우·전·후의 4영체제로 개편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의 실패 이후 의정부에 통합되었다.→ 통리기무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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