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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스페인 북동부 타라고나 주, 프랑콜리 강 하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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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32,299명 (2018 추계) |
면적 | 63㎢ |
대륙 | 유럽 |
국가 | 스페인 |
요약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 타라고나 주의 주도.
프랑콜리 강 하구의 지중해로부터 불쑥 솟아오른 구릉(70m) 위에 있다. 이베리아의 한 부족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BC 218년에 이곳을 점령한 로마의 장군 그나이우스와 푸블리우스 스키피오가 항구와 성벽들을 고쳐 스페인에서 최초의 로마 제국 거점으로 삼았다.
타라코라고 알려졌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통치시절에 번영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가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며 이곳을 콜로니아율리아빅트릭스트리움팔리스라고 불렀다.
타라코를 히스파니아타라코넨시스의 수도로 만든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신전이 세워졌으며, 필라테 성(城)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이었던 곳으로 짐작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트라야누스 황제는 타라코에 권력과 문화적 특권을 부여했으며, 아마 교역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산업이 이 도시를 로마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해항의 하나로 만들었다. 로마 시대의 풍자 시인 마르티알이 이곳의 비옥한 평야와 양지바른 해안을 찬양했으며, 작가 대(大)플리니우스는 이곳의 유명한 포도주를 격찬했다.
사도 바울로가 테클라의 도움을 받아 60년에 타라코에 그리스도교 교회를 세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714년 무어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2세기초에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탈환되었다. 1119년 이후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주요도시로 새로운 활력을 찾았으며, 특히 하이메 1세의 마요르카 정복사업(1229)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로마로부터 제국주의적 통일관을 물려받은 도시이므로 스페인의 왕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며, 침략자들을 막는 보루 역할을 했다.
옛 시가지에는 로마의 석공술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여 지은 집들이 많으며, 시가지 절반 이상이 로마 제국 시대에 지은 로마 성벽과 광장 탑들로 둘러싸여 있다. 로마의 유적으로 극장, 원형경기장, 원형극장(지금은 이곳 고대 박물관의 일부로 되어 있음), 포룸, 공동묘지가 있고, 인근에 송수로, 스키피오스의 무덤으로 알려진 분묘, 바라 개선문이 있다.
훌륭한 회랑이 있는 대성당(12~13세기)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색을 보인다. 교황청립대학교, 미술·공예학교, 대규모의 공업기술전문학교, 스페인에서 4~5세기 그리스도교 관련 기록들을 가장 훌륭하게 수집해놓은 원시 그리스도교 박물관 등이 있다. 대주교관구이기도 하다.
오늘날 타라고나는 번창하는 해항이자 중요한 농산물 시장도시이며 활발한 관광 중심지이다. 공업 발달은 미미하나 1976년 완공 당시에는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이었던 정유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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