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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35,763명 (2024년 추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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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타라와 |
면적 | 81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키리바시 공화국 (Republic of Kiribati) |
기후 | 열대해양성기후 |
민족 구성 | 미크로네시아인(99%) |
언어 | 영어 |
정부/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 단원제 |
종교 | 로마가톨릭(52%), 개신교(40%) |
화폐 | 호주 달러 (AUD) 환율계산기 |
대륙 | 서남아시아태평양 |
국가번호 | 686 |
GDP | USD 211,000,000 |
전압 | 220V, 240V / 50Hz |
도메인 | .ki |
요약 영국 연방에 속한 독립공화국. 수도는 타라와이며 옛 이름은 길버트 제도(Gilbert Islands)이다. 태평양 중앙에 있는 길버트·피닉스·라인 제도로 이루어졌다. 국민의 대다수가 미크로네시아인(99%)이며 화폐는 호주 달러이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높은 편이고 정부에서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목차
접기태평양 중앙에 있는 길버트·피닉스·라인 제도로 이루어졌다. 라인 제도에서 미국 영토에 속하는 노던라인 제도의 3개 섬은 제외된다.
길버트 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나바(옛 이름은 오션 섬)도 키리바시의 일부이다. 키리바시의 수도는 북부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 환초에 있는 작은 섬인 바이리키이다.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던 길버트엘리스 제도가 1975년에 2부분으로 나누어진 뒤, 1979년 길버트 제도는 키리바시 독립국이 되었다(엘리스 제도는 1978년 독립국이 되면서 투발루로 개칭됨).
자연환경
바나바 섬을 제외한 키리바시의 모든 섬들은 해저 화산제도 위에 형성된 낮은 환초로서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발 8m 미만이다. 바나바 섬은 해발 81m의 산호섬인데, 이전에는 풍부한 인산염층으로 덮여 있었다.
남북으로 1,600km 이상, 동서로 3,200km 이상 뻗어 있는 키리바시는 풍부한 어장인 태평양 적도지역의 518만㎢를 둘러싸고 있다. 서쪽으로 나우루, 남쪽으로 투발루·토켈라우가 인접해 있다.
키리바시의 기후는 북동무역풍이 부는 4∼10월에는 맑고, 나머지 기간에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종종 폭우를 동반한다. 그러나 강우량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여 길버트 제도의 연평균강우량은 북부의 3,000㎜에서 남부의 500㎜까지 그 차이가 크다. 이런 강우량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고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종종 심한 가뭄이 든다. 평균기온은 22∼33℃이다. 이 지역의 식생은 염분이 함유된 비옥하지 못한 토양 때문에 제한되어 있으며, 코코넛·판다누스야자·빵나무가 가장 일반적인 식생이다.
국민과 경제
국민
피닉스 제도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20여 개의 환초에만 사람이 거주한다. 키리바시의 토착민은 대부분이 미크로네시아인인데, 폴리네시아의 소수 종족과 태평양 군도 주민이 아닌 사람도 있다. 인구의 95% 이상이 길버트 제도에 살고 있고, 타라와 환초에는 인구의 1/3이 살고 있어 높은 인구밀도를 보인다.
타라와의 바이리키 섬에만 도시화가 다소 이루어졌을 뿐 대부분의 키리바시 사람들은 전통적인 마을에서 살며, 이 지역 제1의 교통수단인 카누를 이용하고 있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높은 편이며, 전체인구의 2/5가 15세 이하이다. 종교는 그리스도교도가 우세하며, 이들 중 절반가량이 로마 가톨릭교도이고, 2/5는 회중교회교도이며, 바하이교도도 약간 있다. 언어는 길버트어와 영어가 사용되고, 공식어는 영어인데, 타라와 환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경제
키리바시는 주로 자급농업과 어업에 기반을 둔 자유기업경제가 발전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집중적으로 바다를 개발하고 환초에 있는 한정된 자원을 이용한다. 코코넛·타로토란·빵나무·마·바나나 등이 주요작물이다. 전통적인 오두막과 교회당의 지붕을 잇는 데 판다누스 잎이 사용된다. 돼지와 가금 등이 사육된다.
라인 제도(테라이나·터부어에런·키리티마티 환초)에 있는 코프라 대농장, 나우루 공화국에 있는 인산염 산업, 원양어업 등은 키리바시의 재정수입원이 되고 있고, 코프라 수출(주로 영국)과 어업권을 팔아(주로 일본) 얻어지는 세입은 중요한 재정수입원이다. 이전의 주요수출품이자 가장 큰 재정수입원이었던 인산염이 바나바 섬에서는 고갈되었고, 광산은 1979년에 폐광되었다. 인산염 광산이 고갈되기 전에 적립 기금이 많이 모아져서 지금은 그 이자가 정부수입이 되고 있다. 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에서 쌀·밀가루·담배·면직물·자전거 등을 수입한다.
이 제도는 주요원조국인 영국을 비롯해 외국의 원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각 군도들이 멀리 흩어져 있어서 환초들간의 교통이 대부분 어렵다. 각 군도들간에는 보트나 비행기가 운항되며, 인접한 섬들 사이에는 간선도로가 나 있다. 주요항구와 국제공항이 타라와에 있다.
정치와 사회
1979년에 공포된 헌법에 의해 국가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보통선거로 선출되고, 단원제 국회는 4년마다 선출되는 39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바나바 섬의 인산염 광산업을 확장하기 위해 라비 섬(피지에 있음)에 정착한 바나바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1명 추가된다.
그러나 이들 바나바인은 고국으로 돌아갈 권리가 보장된다. 사법부는 영국의 제도를 본떠 각 거주 섬에 있는 하급법원을 포함하여 대법원과 항소법원으로 구성된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섬에 있는 지방의회에서 지방행정을 수행한다.
의료 서비스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는데, 타라와에 2개의 병원이 있고, 각 환초에는 간호장교나 의료 보조인력이 관리하는 진료소가 있다. 결핵, 어린이 설사, 세균성이질 등이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평균수명은 약 53세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섬에는 적어도 1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가운데 몇몇은 교회에서 운영한다.
키리바시에는 몇 개의 중등학교와 교사·기술자·해군 등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고, 피지의 수바에는 남태평양대학교의 분교가 있다. 타라와 라디오 방송은 길버트어와 영어로 방송된다. 키리바시에서는 전화 서비스도 실시된다.
역사
고고학적인 증거로 볼 때 지금의 키리바시를 구성하는 이 제도에는 1세기 이전에 오스트로네시아인이 처음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약 14세기에 피지인과 통가인이 도착한 뒤, 먼저 정착한 사람들과 함께 전통적인 키리바시의 미크로네시아 사회·문화를 형성했다.
일찍이 16세기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이 제도 내의 몇몇 섬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1765년 영국의 해군제독 존 바이런이 니쿠나우를, 1788년 토머스 길버트 선장이 타라와를, 존 바셜 선장이 아라누카를 발견했다. 1798∼1826년에는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나머지 섬을 발견했다. 이 섬들은 1820년대에 길버트 제도로 명명되었다. 길버트 제도 주변의 바다는 1800년대 초반부터 1870년대까지 미국과 영국의 배들이 향고래를 낚기 위해 즐겨 찾는 어장이었다. 1837년 최초의 유럽인 영구정착민이 이곳에 도착했고, 1857년 최초의 그리스도교 선교단이 아바이앙에 세워졌다. 주요무역상품은 코코넛 기름이었으나, 1800년대 말엽 코프라로 대체되었다.
영국은 1892년 길버트 제도와 엘리스 제도를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바나바 섬에서 인산염이 발견되자 1900년에 바나바 섬을 편입시켰다. 1916년 길버트·엘리스 제도 및 바나바 섬은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고, 1919년에 키리티마티 환초가, 1937년에 피닉스 제도가 이 식민지에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43년에 이 식민지는 일본의 침입을 받았고, 미국과 일본의 가장 격렬했던 싸움이 타라와에서 벌어졌다.
1972년에 3개의 미국령 섬을 제외한 라인 제도의 모든 섬들도 이 식민지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76년 폴리네시아인이 거주하는 엘리스 제도는 독립하여 투발루가 되었다. 1977년 이 식민지도 자치국이 되었고, 1979년 7월 12일 키리바시 독립국이 되었다.
키리바시와 한국의 관계
외교
한국정부는 키리바시가 독립한 1979년 7월에 국가를 승인하고 1980년 5월 2일에 수교를 맺었다. 한국은 주 피지 대사관이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으며, 1983년 11월에 주 대한민국 키리바시 명예영사관이 설치되었다. 한국은 약간의 무상원조를 했으며 매년 수산분야의 연수생을 초청·연수시키고 있다.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은 2010년 5월, 2014년 10월, 2015년 8월에 방문한 바 있으며, 한국은 2012년 4월에 이준규 장관 특사가 방문했다. 한편 키리바시는 북한과 미수교 상태이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양국 간 무역규모는 미미한 편이다. 2023년 기준 키리바시의 대한국 수출액은 37만 달러, 수입액은 518만 달러이다. 한국은 키리바시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정부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차원에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471만 달러를 원조했으며, 2011년부터 2018년까지 4,2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키리바시 해역은 한국의 원양어선이 조업하는 주요 참치어장 중 하나이다. 양국은 1980년 12월에 어업협정을 체결해 수산분야에서 협력해오고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키리바시에는 6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키리바시의 수도인 타라와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2명의 키리바시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을 방문한 키리바시인은 87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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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피지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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