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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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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술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명으로 발표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아시아 원정기〉(〈키루스 원정기 Anabasis Kyrou〉라고도 함)이다.

이 저술에서 서술의 사실적인 세부 묘사는 매우 뛰어나지만, 서술을 꾸미고 있는 허구적 연설들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것은 약간 낭만적인 젊은이, 모험과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고 외부의 인상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며 행동이 기민한 젊은이가 쓴 보고서이다. 이 저술에는 기억할 만한 대목들이 있다. 그가 적군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말을 달려 앞으로 전진하다가, 고갯마루에서 "바다다, 바다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의 하나이다.

그 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여……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서로 얼싸안았고, 장군과 장교들을 끌어안았다. 이어서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돌을 모아 거대한 기념탑을 쌓아올렸다." 그는 말을 다루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승마술에 대하여 Peri hippikēs〉·〈기병장교 Hipparchikos〉 등의 책을 썼다.

〈승마술에 대하여〉에는 전문적인 기수가 사냥과 전쟁에서 알아두어야 할 모든 지식이 담겨 있으며, 말에 대한 그의 사랑이 드러나 있다. 〈기병장교〉 중에서는 아테네 기병대의 복무 상황을 다룬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짧은 논문인 〈사냥에 대하여 Kynēgetikos〉는 위작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풍부한 기술적 정보를 싣고 있고 사냥을 전쟁만이 아니라 재빠른 사고와 민첩한 행동을 요구하는 모든 활동의 훈련과정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존경하고 소피스트들을 혐오했기 때문에, 3권의 저서 〈변명 Apology〉·〈향연 Symposium〉·〈기억할 만한 일들 Memorabilia〉에서 소크라테스를 나름대로 정당화했다.

여기서 그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동시대인인 플라톤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크세노폰은 철학적 논쟁보다는 개인적 일화와 만찬회의 대화 및 교육의 실제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다룬 내용들은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그는 미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관심을 정당하게 평가했다.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영지 관리와 관련한 사항을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오이코노미코스 Oeconomicous〉라는 책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기술된 개념은 전적으로 크세노폰의 생각이며, 원예학과 그밖의 자세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영지 주인의 아내에 대한 묘사는 특히 매력적이다. 쾌활하고 충실한 아내는 화장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는 데 대한 남편의 비난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크세노폰은 〈키로파이디아 Cyropaedia〉라는 역사소설에서 정치가의 훈련과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소설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창시자 키루스는 이상적인 형태의 교육을 받는다. 크세노폰의 저서 가운데 사상 분야에서는 이 책이 가장 독창적이고 문체가 뛰어난 작품이다.

이 책과 짝을 이루고 있는 책은 왕과 시인이 왕권에 대해 가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히에론 Hieron〉이다.

크세노폰은 그와 같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투키디데스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 때문에, 투키디데스가 끝맺지 못한 저술을 완성했다. BC 411~403년을 다룬 그의 역사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잡동사니를 주워 모은 것으로서, 비판적 분석이 부족하여 투키디데스의 저술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나중에 이 부분은 BC 411~362년에 그리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그리스 역사서 〈헬레니카 Hellenica〉의 제1·2편을 이루었다. BC 403년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술할 때도 크세노폰은 역시 자신의 경험에 의존했고, 주로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이었던 그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경험에도 의존했다. 〈헬레니카〉에서 그는 이따금 솔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과 그들의 편견을 드러냈으며, 서술에 커다란 공백을 남겼다.

객관성과 철저함 그리고 면밀한 조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투키디데스를 흉내내어 삽입한 연설들은 정책의 기본 원칙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화와 경구 및 웅변술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술한 후기 사건에서는 신의 섭리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가 묘사한 주요도시 스파르타와 주인공 아게실라오스는 〈스파르타 헌법 Lakedaimoniōn politeia〉·〈아게실라오스 Agesilaos〉라는 2권의 책에서 특별한 영예를 받았다.

이 2권의 책은 스파르타와 아게실라오스를 찬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아테네에서 살던 말년에 그는 BC 355년의 아테네 경제 구조를 매우 흥미롭게 묘사한 〈방법과 수단〉을 썼다. 〈아테네 헌법 The constitution of Athens〉은 그의 저서들과 함께 전해내려오지만 크세노폰이 쓴 책은 아니다.

크세노폰은 BC 350년보다 1~2년 전에 아티카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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