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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8. 3. 23, 독일 브레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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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1. 3. 5, 제네바 |
국적 | 독일 |
요약 독일의 역사가·정치가.
20세기초 독일의 유명한 평화주의자로서 1927년 페르디낭 에두아르 뷔송과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그는 1889~96년 〈독일 역사학 잡지 Deutsche Zeitschrift für Geschichtswissenschaft〉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1890년에는 로마에 있는 '프로이센 역사연구소'에서 교수 겸 강사로 일했다. 1892년 뮌헨으로 돌아와 '독일 평화협회'에 가입했다.
1894년 그는 겉으로는 역사연구를 표방했으나 내용상 빌헤름 2세를 예리하게 풍자한 소책자 〈칼리굴라 Caligula〉를 출판했다. 이 책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크비데는 황제모독죄로 3개월간 투옥되었다. 1907~19년 바이에른 의회의 의원 겸 '국제의원연맹'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14~29년에는 독일 평화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평화정착을 위해 외국영토를 합병해야 한다는 독일 내 여론에 반대했다.
그는 1919년 민주당에 입당했고, 1919~20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일했다. 국회에서 비례선거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의 독일전범 조항을 비난했다. 1921~29년 우익의 평화주의를 대변하는 '독일 평화연합'의 회장을 지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지한 그는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을 주장했으며, 그는 독일에서 군국주의의 부활과 성장에 반대했다. 그는 독일 군대의 불법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월요일의 세계 Welt am Montag〉를 저술하여 1924년 뮌헨에서 체포되었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후 제네바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평화주의 문제를 비롯해 역사적·정치적 주제에 관한 저서들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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