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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조

다른 표기 언어 Correggio
요약 테이블
출생 1494. 8, 모데나 코레조
사망 1534. 3. 5, 코레조
국적 이탈리아

요약 코레조는 파르마파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 그의 후기 작품은 많은 바로크 및 로코코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최초의 주요 작품으로는 파르마에 있는 산파올로 수도원의 천장에 그린 인문주의적 주제의 우의화들(1519경) 및 파르마의 산조반니에반젤리스타 교회(1520~23)와 파르마 대성당(1526~30)에 있는 프레스코들이 있다. 시적인 느낌을 주는 후기의 뛰어난 유화 작품으로는 <성녀 카타리나의 신비한 결혼>(1526경)이 있다. 17세기의 바로크 화가들은 그의 장식 개념을 받아들였고, 특히 파르마 출신인 조반니 란프랑코의 천장화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코레조는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수호신격이 되었으며 그의 대형 제단화들은 18세기의 많은 미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는 동안 열심히 모사하는 작품에 속했다.

개요

파르마파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 그의 후기 작품은 많은 바로크 및 로코코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최초의 주요 작품으로는 파르마에 있는 산파올로 수도원의 천장에 그린 인문주의적 주제의 우의화들(1519경) 및 파르마의 산조반니에반젤리스타 교회(1520~23)와 파르마 대성당(1526~30)에 있는 프레스코들이 있다. 시적인 느낌을 주는 후기의 뛰어난 유화 작품으로는 〈성녀 카타리나의 신비한 결혼 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1526경)이 있다.

초기생애

코레조의 아버지는 펠레그리노 알레그리라는 상인으로 코레조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다.

코레조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죽었으며 이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는 독학한 미술가로 추정되기도 했지만 광학·원근법·건축·조각·해부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보여주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미루어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된다. 초기에는 아마 화가인 삼촌 로렌초 알레그리에게 교육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1503년경 모데나에서 공부하다가 1506년에 유명한 초기 르네상스 화가인 안드레아 만테냐가 있던 만토바로 간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만테냐가 죽은 뒤 만토바의 산안드레아 교회에 있는 만테냐가(家) 예배당의 장식을 그가 완성했다고 한다. 원형 그림인 〈예수의 매장 Entombment of Christ〉·〈성모와 성인들 Madonna and Saints〉은 코레조의 초기 작품이 확실한 것 같다.

초기 작품은 만테냐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전체적인 화풍은 이탈리아 북부 르네상스 미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에 더욱 가까웠다. 만테냐가 엄격하게 절제된 선으로 윤곽을 나타내는 것에 비해 코레조는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섬세한 명암 구사를 통해 윤곽을 부드럽게 하고 분위기를 자아내는 효과를 살렸다. 초기에 로마를 방문하여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에 그린 프레스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만토바를 떠난 뒤 코레조는 파르마와 고향인 코레조에서 활동했다. 그의 첫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성모 Madonna of St. Francis〉는 1514년에 코레조에 있는 제단화 산프란체스코 교회의 주문으로 그려졌다. 주요 초기 작품에는 색채가 좀더 화려해진 종교화인 〈성탄 Nativity〉(밀라노 브레라 미술관)·〈동방 박사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Kings〉·〈성모에게 작별인사를 드리는 예수 Christ Taking Leave of His Mother〉 등이 있다.

성숙기

코레조의 성숙한 양식은 파르마에서 처음으로 주문받은 산파올로 수녀원의 대수녀원장 담화실 천장화에서 엿보이기 시작했다.

1518~19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는 만토바의 대저택들에 그린 만테냐의 벽화(1494)에서 따온 요소들이 있지만 작품 구상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었다. 대수녀원장 조반나 데 피아첸차는 파르마에 있는 산조반니에반젤리스타 교회의 돔을 장식하는 중요한 임무도 코레조에게 맡겼다. 코레조는 그 교회의 돔에 〈예수 승천 Ascension of Christ〉(1520~23)을 그린 데 이어 같은 교회의 앱스를 장식했는데, 그 가운데 〈성모의 대관식 Coronation of the Virgin〉이라고 이름붙여진 부분(파르마 국립미술관)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1587년에 파괴되었다.

이 작품은 여전히 전성기 르네상스의 전통과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보여준다.

파르마 대성당의 돔에 그려진 프레스코 〈성모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은 벽화가로서 절정기에 이른 코레조의 화풍을 보여준다. 이 프레스코는 또한 극적으로 환상적인 바로크 양식의 천장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돔의 표면 전체가 조화로운 하나의 거대한 회화 단위로 처리되어 있어 마치 하늘의 궁륭 같은 느낌을 준다.

구름 속의 인물들이 관객들이 서 있는 실제 공간 속으로 튀어나올 듯이 그린 사실적 묘사 방식은 당시로서는 놀랍고도 대담한 단축법 표현이었다.

나머지 주요작품들은 거의 연대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크게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대형 제단화를 비롯한 대형 종교화, 신화를 주제로 한 서정적인 감각의 작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교한 개인 예배용 작품군, 제단화의 상당수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양치기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1530경, 독일 드레스덴 회화관)는 〈밤 La Notte〉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성 히에로니무스의 성모 Madonna of St. Jerome〉(파르마 국립미술관)는 〈낮 Il Giorno〉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후기 제단화들은 보통 이상화된 인물들 사이에 친근하고 가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이같이 친근하고 가정적인 정취는 〈바구니를 든 성모 The Madonna of the Basket〉·〈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동정녀 The Virgin Adoring the Child Jesus〉(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같은 작은 예배용 작품들에서도 두드러진다.

반면에 〈성녀 카타리나의 신비한 혼인〉은 16세기 중반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림으로 나타낸 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후기 작품들은 유화를 다루는 데 통달한 코레조의 솜씨를 보여준다. 그는 물감의 질감이 나타내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흥미를 가졌으며, 〈다나에 Danae〉(로마 보르게세 미술관)·〈가니메데스의 유괴 The Rape of Ganymede〉·〈주피터와 이오 Jupiter and Io〉(둘 다 빈의 미술사박물관에 있음) 등 일련의 신화적인 작품들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효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그림들에서는 캔버스 위에 가볍게 처리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그림물감의 성질이 주제의 감각적인 특성을 강화하고 있어, 눈에 거슬리거나 외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에로틱한 요소를 최대한으로 나타내고 있다.

코레조의 영향은 파르마 회화, 특히 파르미자니노(1503~40)의 마니에리스모 양식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주목할 만한 직계 제자는 없이 수많은 추종자들만이 그의 뒤를 이었다. 17세기의 바로크 화가들은 그의 장식 개념을 받아들였는데 특히 파르마 출신인 조반니 란프랑코(1582~1647)의 천장화를 보면 이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코레조는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수호신격이 되었으며 그의 대형 제단화들은 18세기의 많은 미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는 동안 열심히 모사하는 작품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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