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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 침례교회의 역사는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C. 펜윅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의 노력에 의해 31개 교회가 개척되었다. 1949년 비로소 교단 명칭이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변경되었다. 1968년에는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포항측)과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대전측)으로 분열되었던 교단이 합동총회를 개최했고,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교회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7년 기준 약 2,780개의 교회와 118개 지방회가 있다.
한국 침례교회의 역사는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C. 펜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함경남도 원산에 자리잡은 펜윅은 다른 선교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주·간도·시베리아·몽골 등)에 복음전도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국 선교에 힘을 쏟았다. 그 결실로 31개 교회가 개척되자 교단 조직의 필요를 느끼고 1906년 충청남도 강경에서 모든 동역자와 교인들을 모아 대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했으며, 46개조의 회칙을 만들었다. '대한기독교회'의 조직은 철저한 권위체제였으며, 신앙의 근간은 침례교 신앙이었고 성령이 인도하는 신약성서적 회중사상을 강화했으나 개신교회의 자치권은 전혀 없었다.
이후 1940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 명칭을 바꾸었고, 1949년 제39회 총회가 충청남도 강경에서 개최되었을 때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 침례회'로 다시 변경했다. 1959년 3월 17일 대전 대흥침례교회에서 개최된 실행위원회는 총회 장소 결정을 둘러싸고 양분되었으며, 3월 18일 한미연석회의에서는 선교부측에서 총회의 전도부장을 불신임 결의함으로써 총회와 선교부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결국 2개의 분열 총회가 충청남도 대전과 경상북도 포항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1968년 4월 16일 9년 동안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포항측)과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대전측)으로 분열되었던 교단이 합동총회를 개최하고 화해와 단결의 새출발을 다짐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청지기운동, 1964년부터 시작된 교회학교 확장운동 및 복음전도운동, 1968~70년에 걸친 교회확장 및 전도대회 등의 훈련과 교역자 강습회는 1970년대 전반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교단통합의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총회 분열기간 동안 총회 안에 깊이 침투되었던 제반 비침례교적인 요소들을 제거시키는 데 크게 작용했다.
또한 1970년대부터 신학대학 출신의 참신한 젊은 일꾼들의 대거 등장, 교회진흥원에서 발간한 교회학교 공과 등 각종 자료의 활용, 그리고 교회성장을 위한 각종 강습회와 훈련 캠페인 등은 1970, 1980년대의 침례교회 성장의 기틀과 발판을 다지고 마련했다. 교회의 양적 규모도 한미 전도대회 등을 통해 대폭 확장되었다. 1976년 11월 4일에는 한국침례회연맹의 교단명칭이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되었다.
1981년에는 수도권의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수도신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은퇴 후의 목회자와 목회자 가족의 생활과 복지를 지원하기 위한 교역자 복지회가 1990년 설립되어, 은퇴 목회자와 가족에게 연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이미 1954년 결성되었던 전국여선교연합회에 이어, 1982년에는 전국남선교연합회가 구성되어 평신도의 활동이 강화되었다. 기독교한국침례회의 본부는 2013년 10월 미국 남침례회 한국 선교부 빌딩의 대지에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했다.
2017년 기준 2,785 교회, 118개의 지방회, 약 80만 명의 교인이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이다. 총회 본부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6길 10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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