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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한국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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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89년 독립선교사로 조선에 온 펜윅이 1893년 이후 침례교로 전향한 다음 조직한 한국순회선교회로부터 비롯되었다. 1901년 충청남도 공주, 강경의 엘라딩 기념선교회 사업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1906년 강경에서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했다. 이 교단은 특정 교단의 색채를 배제하고 오로지 성령의 인도에 따른 회중의 개념만을 강조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에 따른 명칭변경의 수난을 겪다가 1944년 해체되었다.
1949년 강경총회에 미국 남침례회 외국선교부의 동양 총무인 코우덴을 초청하고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침례회총회로 변경했다. 1959~68년에 대전총회파와 포항총회파 간에 심각한 분열이 있었으나, 1968년 다시 통합하여 교회확장 및 전도운동을 전개하는 등 1970년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889년 독립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되었던 M. C. 펜윅이 1893년 이후 3년간 캐나다 귀국 길에 침례교로 전향한 다음 조직한 한국순회선교회로부터 비롯되었다. 펜윅은 1896년 조선에 돌아와 원산에서 선교사업을 계속하였다. 1901년에는 충청남도 공주, 강경의 '엘라딩 기념선교회' 사업을 인수하는 한편, 각처에 문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1906년에는 강경에서 교단대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였다. 이 교단은 특정 교단의 색채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성령의 인도에 따른 회중의 개념만을 강조하였다. 이후 1921년의 '동아기독교회', 1933년의 '동아기독대', 1940년의 '동아기독교' 등 일제의 탄압에 따른 명칭변경의 수난을 겪다가 1944년 해체되었다. 한편 펜윅은 일찍이 선교 지역을 만주, 몽골, 남부 시베리아로 바꾸어 가며 교세확장을 이루었으나, 8·15해방 후 이 지역에 일구었던 터전을 잃는 비운을 겪어야 하였다.

1949년에는 강경총회에 미국 남침례회 외국선교부의 동양 총무인 B. 코우덴을 초청하고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침례회총회'로 변경하였다. 이는 한국의 '대한기독교회'가 정식으로 침례교단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1959~68년에 선교사 중심의 대전총회파와 펜윅 선교사의 동아기독교 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포항총회파 사이에 심각한 분열이 있었으나, 1968년 다시 통합하여 '한국교회확장 및 전도운동'을 전개하는 등 1970년대에는 교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교단조직은 총회, 지방회, 개별교회의 위계를 갖추고 있으나 각각은 철저하게 서로 간섭하지 못하는 회중정치이자 개교회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세계복음연맹 세계지도자대회 참석자들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인 유영식 목사의 대표기도로 개막식 참석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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