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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39년(고종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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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31년(충혜왕 1) |
국적 | 고려, 한국 |
요약 고려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중서령 충(冲)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평장사 자(滋)이다. 1270년(원종 11) 정조사(正朝使)로 몽골에 다녀왔으며, 1274년(충렬왕 즉위) 감찰잡단(監察雜端)이 되었다. 1279년에는 감찰시승(監察侍丞)으로서 시사(時事)에 관하여 상소하다가 왕을 노하게 하여 대청도로 귀양갔는데, 승지 조인규(趙仁規)의 도움으로 곧 풀려나 복직되었다.
1287년 전법총랑 우부승지(典法摠郞右副承旨)가 되었으며 부밀직사사 감찰대부(副密直司使監察大夫)를 거쳐 1293년 지밀직사로서 전라도도지휘사(全羅道都指揮使)로 파견되었다. 1295년 좌상시로 임명되었고, 1297년에는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元)나라에 다녀온 뒤 판밀직사사가 되었다. 1307년 도첨의중찬 판전리감찰사사(都僉議中贊判典理監察司事)로서 등극사가 되어 원나라에 갔다. 그때 고려에 설치된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평장사 활리길사(闊里吉思)가 고려의 노비법을 개혁하여 권세가가 빼앗아 소유한 노비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하자, 원황제에게 청하여 노비법 개정을 중지시켜 그 공으로 공신녹권을 받았다. 충렬왕이 세자인 충선왕을 폐하고 서흥후 전(瑞興侯琠)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왕을 설득하여 그만두게 했다. 1309년(충선왕 1) 충렬왕이 죽고 충선왕이 복위하자, 수첨의정승 감춘추관사(守僉議政丞監春秋館事)로 임명되었다. 1321년 대령군(大寧君)으로 봉해지고, 수충순의보리공신(輸忠順義輔理功臣)의 칭호를 받고 치사(致仕)했다. 1324년(충숙왕 11) 다시 등용되어 수첨의정승 판선부사 대령부원군(守僉議政丞判選部事大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그해 정조사(正朝使)로서 원나라에 가서 조적(曺頔)·오잠(吳潛) 등이 충숙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 고(瀋陽王暠)를 즉위시키려다가 실패한 데 이어 고려에 행성(行省)을 설치하여 원의 내지로 편입시키려는 책동을 막고 돌아왔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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