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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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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북한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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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북한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50년 10월 중국은 6·25전쟁에 참전했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과 1953년 비밀군사협정을 통해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그후 1950, 1960년대에 상호관계는 때로 멀어지기도 했으나, 기본적인 관계의 틀은 변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중국에서는 마오쩌둥과 화궈펑[華國鋒]에 의해 반소(反蘇) 노선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전략적인 지위가 점차 중요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북한의 대남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지원을 활발히 전개하여 1971년 8월 무상군사원조협약 등을 체결했다. 중국은 북한의 통일노선을 지지했으며, 주한미군의 철수 및 북한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임을 강력히 주장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더욱 강화되어 1975년 4월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했으며, 1978년 화궈펑과 덩샤오핑이 각각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1978년 말 중국 제11기 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개혁실용주의 노선과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의 대외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한국에 대한 기존의 인식변화로 과거에 쌓아온 북한과의 관계가 변화되었다.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한 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입장과 상반된 것이었다.

1992년 8월 한국과의 수교로 중국은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한중 수교로 북한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지 상황에서, 중국은 한반도 내에서의 계속적인 영향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조율해 나갔다. 한중 수교 이후에도 북한·중국 간 교역은 꾸준하게 유지되었으며,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한 북한에 대해 국제적인 제재 움직임이 거세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중국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는 등 북한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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