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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그리스 신 제우스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주피터는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주피터의 형용어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루케티우스이다.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주피터 엘리키우스라는 이름으로 주피터에게 기우제를 올려 비위를 맞추고, 비를 내려달라고 그를 달랬다. 주피터는 풀구르라는 이름으로 마르티우스 광장에 제단을 갖고 있었으며, 벼락을 맞은 곳은 모두 그의 소유지가 되어 아무도 신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둥근 담장을 둘러 보호했다. 주피터는 인류의 위대한 수호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것은 뚜렷한 도덕률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주피터는 특히 맹세, 조약 및 동맹과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형태의 결혼은 주피터를 섬기는 사제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 신 제우스와 같은 어원('빛나는'이라는 뜻의 diu)을 갖고 있는 주피터는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주피터의 형용어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루케티우스(빛을 가져오는 신)이다. 후세의 문학은 '탁 트인 하늘 밑에서'를 뜻하는 'sub Iove' 같은 구절에서 이와 똑같은 생각을 보존했다.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주피터 엘리키우스라는 이름으로 주피터에게 기우제를 올려 비위를 맞추고, 비를 내려달라고 그를 달랬다. 주피터는 풀구르라는 이름으로 마르티우스 광장에 제단을 갖고 있었으며, 벼락을 맞은 곳은 모두 그의 소유지가 되어 아무도 신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둥근 담장을 둘러 보호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언덕 꼭대기에서 제우스 신을 경배했다.
그래서 로마 남쪽에 있는 알반 언덕 위에는 고대에 주피터 라티아리스라는 이름으로 그를 경배한 장소가 있었다. 이곳은 라틴족이 세운 30개 도시로 이루어진 도시 동맹의 중심지였고, 로마는 원래 이 동맹의 일원이었다.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는 가장 오래된 주피터 신전이 있었다. 이곳에는 제우스와 주피터 숭배에 공통된 신성한 나무인 참나무의 전설이 있었으며, 고대인들이 번개라고 믿은 '라피데스 실리케'(아마도 도끼였을 것임)도 이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페티알레'라는 로마의 사제들은 전쟁을 선포할 때나 로마 국가를 대신하여 조약을 맺을 때는 이 '라피데스 실리케'를 상징물로 이용했다(종군사제단).
주피터는 인류의 위대한 수호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것은 뚜렷한 도덕률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주피터는 특히 맹세·조약·동맹과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형태의 결혼(콘파레아티오)은 주피터를 섬기는 사제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보다 지위가 낮은 신인 디우스 피디우스와 피데스도 원래는 주피터와 동일하거나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d〉를 보면 주피터는 여러 가지 점에서 로마적인 동시에 그리스적이지만, 여기서도 주피터는 여전히 신과 국가 및 가족에 대한 의무(피에타스)를 지키는 영웅들에 대해 위대한 수호신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피터의 그런 측면은 군주 정치 말기에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에 신전이 세워지면서 새로운 힘과 의미를 얻게 되었다.
지금도 토대가 남아 있는 이 신전은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모든 주피터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한 주피터)에게 바쳐졌고, 주노와 미네르바 여신도 이 신전에 함께 모셔졌다. 이런 방식은 분명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세 신을 하나의 신전에 모시는 것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있지만, 고대 로마의 종교에서는 생소한 방식이었다. 이 신전 봉헌 축제는 9월 13일에 열렸다. 로마 집정관들은 원래 이날 원로원 의원과 그밖의 행정관 및 사제들을 거느리고 주피터 신전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집정관은 전임자들이 맹세를 이행했다는 표시로 주피터가 좋아하는 제물인 하얀 수소를 신에게 바쳤고, 지난 한 해 동안 나라를 보존해준 데 대해 감사를 드린 다음, 전임자들과 똑같은 서약을 했다. 그 일이 끝나면 주피터 축제인 '에풀룸 요비스'가 벌어졌다. 나중에는 이 날이 로마 대회(루디 로마니)의 핵심이 되었다. 승리한 군대가 고국으로 돌아오면 이 신전까지 개선 행진을 벌였다.
로마 공화국 시대에도 이 신전은 로마의 가장 중요한 예배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은 새로운 신전(아폴로 팔라티누스와 마르스 울토르)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주피터 신전의 경쟁자였지만, 황제는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를 최고 지위에서 쫓아내려고 애쓸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주피터는 국가의 수호신이었던 것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황제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후 주피터 경배가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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