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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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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403년(태종 3)에 승정원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되어 1451년(문종 1)에 잠깐 폐지된 적이 있으며 1460년(세조 6)에 교서관에 이속시켜 전교서로 개칭되었다. 1782년(정조 6) 교서관이 규장각에 예속되었다가 후에 다시 분리되었다. 잠시 감인소라 불리기도 했지만 주자소의 이름을 되찾아 조선말까지 주자와 서적의 인쇄를 맡았다.
태종은 우문정책을 펴기 위해 책을 널리 보급하려 했는데, 당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적이 필요했으므로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고려 말부터 서적포에서 주자와 인쇄를 했고 조선은 이를 계승했으나, 개국 초기에는 활자의 주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로인해 서책 간행에 많은 불편이 야기되어 독립된 전문기구로서 주자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설치 후 몇 개월에 걸쳐 활자를 주조하여 수십만 개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이다.

1403년(태종 3)에 승정원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되어 1451년(문종 1) 7월부터 12월까지 잠깐 폐지된 적이 있으며 1460년(세조 6) 5월에 교서관에 이속시켜 전교서(典校署)로 개칭되었다. 1782년(정조 6) 교서관이 규장각에 예속되면서 규장각 소속이 되었으나 후에 다시 분리되었다. 잠시 감인소라 불리기도 했지만 주자소의 이름을 되찾아 조선말까지 주자와 서적의 인쇄를 맡았다.

태종은 우문정책(右文政策)을 펴기 위해 책을 널리 보급하려 했는데, 당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적이 필요했으므로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고려말부터 서적포(書籍鋪)에서 주자와 인쇄를 했고 조선은 이를 계승했으나, 개국 초기에는 활자의 주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로인해 서책 간행에 많은 불편이 야기되어 독립된 전문기구로서 주자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설치 후 몇 개월에 걸쳐 활자를 주조하여 수십만 개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이다. 그런데 만든 시기에 대한 문헌과 실물의 고증이 확실한 것은 동활자인 계미자이다. 이후의 많은 금속활자의 주조가 대부분 여기서 이루어졌다.

주자소의 위치는 초기에는 서울의 남쪽 훈도방에 있었으나 다른 기관과의 업무연계 때문에 경복궁·창경궁 등의 궐내로 옮겨졌다. 주자소의 직제는 초기에는 승지 2명이 주관하고 2품 이상의 문신 1명과 승지 1명을 제조로 삼았으며 교서, 교리 등을 두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야장(冶匠)·균자장(均字匠)·주장(鑄匠)·조각장(雕刻匠)·목장(木匠)·지장(紙匠) 등의 공장을 두었다. 또 〈대전회통〉에 의하면, 수장원(守欌員)·장책원(粧冊員)·사준(司準)·사감(司勘) 등을 두었다. 현재 주자소에서 주조되고 사용되었던 활자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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