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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차원의 평면을 강조하는 회화기법.
1880년대에 폴 고갱, 에밀 베르나르, 루이 앙크탱 등의 화가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인상주의 화풍 및 이론과 결별한 그들의 회화 양식은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기보다는 기억에 의존하여 작업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종합주의라는 용어는 고갱이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이 말은 주제의 느낌이나 기본 개념을 형식(색면과 선)과 종합시키는 미술양식을 의미했다. 고갱은 1886년까지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으나, 그들처럼 윤곽이 뚜렷한 형태나 구성요소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연에서 빛의 효과를 탐구하는 데 전념한 인상주의자들의 방식이 한계가 있고 피상적이며 생각이나 착상을 소홀히 여긴 것이라고 느꼈다. 명암이나 입체감의 표현이 없는 순수한 색면과 주된 몇몇 선들을 토대로 구성요소들을 거의 2차원적으로 배열한 새로운 장식적 회화 양식을 추구하던 그는 1886, 1888년 여름에 퐁타방·르풀뒤 등지에서 베르나르를 비롯한 여러 추종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거기에서 종합주의 그룹을 결성했다. 이 새로운 양식의 예로 고갱의 〈설교 후의 환영 Vision After the Sermon〉(1888,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이 큰 그림의 아래쪽에는 교회를 나서는 농촌 여인들이 있으며, 그 위에는 그날의 설교 주제였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그려져 있다. 고갱은 일상 세계와 공상의 세계를 한 장면 속에 결합시키려 한 것이다. 아래쪽의 여인들은 명암이나 원근감의 표현 없이 평면적인 색면들로 형상화되어 있고, 강렬한 색채의 커다란 면들에서는 명암을 찾아볼 수 없다. 구성은 매우 강렬해서 일상과 공상의 두 세계를 하나의 시각적 경험으로 융합시켜 놓는다.
베르나르와 앙크탱은 자신들의 회화기법을 일컬어 '클루아조니슴'(Cloisonnism)이라 했는데, 순수색의 넓은 면과 굵직한 검정 윤곽선으로 생기는 효과가 중세의 클루아조네(칸막이된) 에나멜 기법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중세미술뿐만 아니라 일본 판화(우키요에[浮世繪])와 원시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종합주의는 1890년대 결성된 나비파에 영향을 주었으며, 한때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퐁타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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