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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

다른 표기 언어 존스 , John Paul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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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47. 7. 6, 스코틀랜드 커쿠브리 커크빈
사망 1792. 7. 18, 프랑스 파리
국적 미국

요약 미국 해군의 영웅.
본명은 John Paul.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 동부해안에서 벌어진 해전(1779. 9. 23)에서 영국 군함을 크게 무찌른 것으로 유명하다(→ 봄옴리처드호와 세라피스호의 해전)

스코틀랜드 상선 선주인 존 영거 밑에서 12세 때 견습선원으로 일을 시작한 존스는 선상급사로 버지니아로 가는 배에 승선하여 버지니아 프레더릭스버그에서 형 윌리엄을 만났다.

1766년 영거가 사업에 실패하자 자메이카 선적의 노예선에서 1등 항해사 자리를 얻었다. 2년 후 노예무역을 청산하고 스코틀랜드로 가는 배를 탔다. 항해 도중 선장과 1등 항해사가 열병으로 죽자 배를 지휘해 무사히 귀항시켰고 이 공로로 선장에 임명되었다. 1772년 서인도제도에서 배를 1척 구입했지만 다음해 선상 폭동을 맞게 되었다. 그는 주모자를 살해한 뒤 재판을 모면하려고 서인도제도에서 도망해 이름을 존 폴 존스로 바꾸었다. 2년 후 프레더릭스버그로 돌아왔고 독립전쟁이 터지자 필라델피아로 가서 신설된 대륙 해군의 대위로 임명되었다.

이세크 홉킨스 준장이 지휘하는 소규모 함대의 기함인 '앨프레드호'에 배속되어 바하마에서 활약했으며, 귀환중 벌어진 영국배 '글래스고호'와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776년 '프로비던스호'의 지휘를 맡아 8~10월에 버뮤다에서 노바스코샤에 이르는 대서양 일대를 항해하면서 영국 프리깃함을 2차례 기습공격해 8척의 배를 나포하고 그 이상을 침몰시키거나 불태웠다. 같은 해 '앨프레드호'를 지휘하면서 5, 6척의 배를 나포·예인하여 귀항했다. 미국 의회가 그에게 새로 건조한 '레인저호'의 지휘를 맡기자(1777. 6) 세인트조지 해협과 아일랜드 해 사이를 기세당당하게 항해하면서 수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1778년 5월 8일 브레스트에 입항하여 프랑스인으로부터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1779년 8월 '본옴 리처드호'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4척의 작은 배를 대동하고 영국의 섬들 주위를 항해했다. 9월에 이 소함대가 영국 군함 '세라피스호'와 '카운티스 오브 스카버러 호'의 호위를 받고 있던 발틱 상선단을 저지했다. 그후 벌어진 전투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전 가운데 하나이다. 3시간 30분간 계속된 맹렬한 함포사격전의 초기단계에서 존스는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적들에게 "나는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전사자가 많았지만 대승을 거둔 그는 세라피스호가 항복하자 부하들과 함께 그 배에 승선했다. 전투중에 입은 손상으로 본옴 리처드호는 얼마 후 침몰하고, 존스는 세라피스호와 나포한 카운티스 오브 스카버러 호를 몰아 네덜란드로 항진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그에게 황금 손잡이가 달린 칼을 하사했으며 그를 프랑스의 기사로 임명했다.

1787년 미국 의회가 수여하는 금메달을 받은 후 공무를 띠고 덴마크로 급파되었으며, 해외에 있으면서 러시아 해군 소장의 지위를 수락했다. 그의 인생에서 이 시기는 내내 힘든 때였다. 여러 차례 공로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모함에 빠져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1790년 쓰라린 심정으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파리로 돌아와 이내 숨을 거두었으며 이름 없는 묘지에 묻혔다. 1세기가 지난 뒤에야 미국 전함이 유해를 미국으로 송환했으며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그의 무덤은 국가적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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