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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시대 여자의 머리장식.
검은 비단으로 겉을 싸고 안은 딱딱한 종이와 솜을 넣어 단단하게 했으며 꼭대기에 칠보 장식을 해서 아름답게 꾸몄다. 족두리의 기원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고려사를 살펴보면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고고리라는 것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곧 관(冠)의 이름으로서 세상에 전해진 것이다.
지금의 족두리라는 것이 고고리와 그 음이 비슷해 혹시 고고리가 와전되어 족두리가 된 것은 아닐까"라고 했다. 〈고사통 古事通〉에는 "지금도 여자의 예장에 쓰는 족두리는 몽골의 사부녀가 외출할 때 쓰는 모자이고, 신라 복식으로 산호주 꾸러미의 도투락댕기도 몽골 기혼녀의 두식으로 쓰는 도톨이라 하는 것이며……"라고 하여 족두리가 몽골풍임을 말해준다.
〈임하필기 林下筆記〉에서는, 족두리는 광해군 때부터 겉은 검정 비단, 안은 자주 비단으로 싸고 속을 비게 하여 머리 위에 썼으며 나라의 풍속으로 변했다고 하여 민간화되었음을 암시했다. 영조·정조 때 가체금지령이 내린 이후 성행했으며 근대 이후로는 혼례용 수식으로 쓰이고 있다. 족두리의 종류에는 장식이 없는 민족두리, 호화로운 장식의 꾸밈족두리, 상례에만 쓰였던 흰족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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