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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일제가 한국사 교육 금지와 고전 문화재 반출을 자행하자, 최남선 등은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고전의 수집·간행과 보급운동의 필요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남선은 1910년 12월초 신문관 2층에 조선광문회를 발족하고, 고전 간행, 귀중 문서의 수집·편찬·개간을 통한 보존·전파를 꾀했다.
주요간부는 장지연·유근·이인승·김교헌 등으로, 수사·이언·입학을 3대 지표로 했다. 첫 사업으로 〈동국통감〉·〈열하일기〉를 간행하고, 유근·이인승 편집으로 옥편 〈신자전〉을 간행했다. 이어 주시경·권덕규·김두봉 등이 조선어사전인 〈말모이〉의 편찬을 준비했으나, 주시경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일제의 문화적 말살정책에 대해 '조선정신'의 발견과 전통문화의 보존·계승으로 저항했다.
1907년 여름 일본에서 귀국한 최남선은 출판사 신문관을 창설하고 잡지 〈소년〉을 발행했다. 그리고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윤치호(尹致昊)·최광옥(崔光玉)·옥관빈 등과 함께 청년학우회를 설립하여 자강·계몽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일제가 한국사 교육 금지와 고전 문화재 반출을 자행하자, 배우기만 하면 된다는 계몽운동의 낙관적 문명개화의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최남선 등은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고전의 수집·간행과 보급운동의 필요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0년 10월 29일 최남선은 광문회 설립을 계획하여 간행물예약금 모집 허가를 경무총감부에 제출했으며, 12월초 신문관 2층에 조선광문회를 발족했다.
주요간부는 장지연(張志淵)·유근·이인승(李寅承)·김교헌(金敎獻) 등으로, 목적은 고전 간행, 귀중 문서의 수집·편찬·개간을 통한 보존·전파였으며, 수사·이언·입학을 3대 지표로 했다. 첫 사업은 〈동국통감 東國通鑑〉·〈열하일기 熱河日記〉의 간행이었고, 2번째로 유근·이인승 편집으로 옥편 〈신자전 新字典〉을 간행했다. 이어 주시경(周時經)·권덕규·김두봉(金枓奉) 등이 조선어사전인 〈말모이〉의 편찬을 준비했으나, 주시경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처음에는 "본회의 계획이 성취된 후에는 조선에 진서는 절무할 것이요, 본회 간행물이 발포된 후에는 조선학계의 면목을 위하여 일변하리라"라고 할 만큼 180여 종의 고전을 중간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 20여 종밖에 간행하지 못했다. 일제의 문화적 말살정책에 대해 '조선정신'의 발견과 전통문화의 보존·계승으로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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