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62, 평북 의주 |
---|---|
사망 | 1931. 10. 2 |
국적 | 한말, 한국 |
요약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유평(幼平), 호는 국동(菊東). 박문일(朴文一) 문하에서 수학했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장원섭(張元燮)·신우현(申禹鉉) 등과 평안북도 창성에서 산포수를 모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창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붙잡혀 2년간 복역한 후 고종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1910년 한일합병 뒤 다시 최원길(崔元吉) 등과 의병을 일으켜 창성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항일전을 전개하다 만주로 망명했다.
류허 현 싼위안푸에서 박장호·백삼규·전덕원(全德元) 등과 함께 농무계와 향약계를 조직하여 애국정신과 단결심 고취 및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미간지를 개간하여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1919년 4월 만주에 있던 의병계, 독립운동 단체들인 보약사·향약계·농무계·포수단 등과 유림지도자·의병지도자들을 규합, 대한독립단을 조직했다. 박장호가 총재로 추대되고 그는 총참모에 임명되었다.
대한독립단이 조선왕조의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기원독립단과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주장하는 민국독립단으로 나뉘자, 신우현(申禹鉉)·변창근·김승학(金承學) 등과 함께 민국 연호의 사용을 주장하는 민국독립단을 주도했으며 도총재로 추대되었다. 그해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연통제를 실시하자 평북독판에 임명되어 연통제 조직을 정비·확대시켰다.
1920년 2월 대한독립단·대한의용군사의회·한족회·대한청년단연합회 등 만주 일대의 군사기관이 통합되어 상해임시정부 군무부 직할의 광복군사령부로 개편되자 참모부장에 임명되었다. 이어 교민통치기관인 대한광복군 참리부가 결성되자 참리부장에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20년 7월 광복군총영이 설립되자 경리부장이 되었다.
그 해 10월 일본군이 재만교포를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경신참변이 일어나자 교포 100여 세대를 수원성 포두현으로 이주시켜 황무지를 개간해 배달농장을 만들었다. 1924년 의민부를 조직하고 총재로 추대되어,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광복운동을 계속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