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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9. 12. 5, 잉글랜드 햄프셔 사우샘프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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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5. 11. 20, 런던 켄징턴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해군제독.
Viscount Jellicoe of Scapa, Viscount Brocas of Southampton이라고도 함.
제1차 세계대전 때 유틀란트 전투(1916. 5. 31)에서 영국 함대를 지휘했다. 상선 선장의 아들로 태어나 로팅딘에서 교육을 받고, 1872년 해군장교 후보생으로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1883년에 영국해군대학에 들어가 포격전문가가 되었으며, 1888년에는 해군부 병참국장보로 임명되었다.
1891년에 그는 중령으로 진급했고, 그 직후 지중해 함대의 빅토리아호 부함장으로 임명되었다. 1898년에 그는 중국에 주둔하는 센추리언호 함장으로 임명되어, 1900년 의화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베이징 주재 영국 공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했다. 1902~14년 그는 해군부와 함대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면서, 영국 해군함정의 포격술을 개선하고 체계화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는 스카파 해군기지로 전속되어 조지 캘러헌 제독 밑에서 부사령관으로 있다가, 얼마 후 제독 서리로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1915년에 정식 제독이 된 뒤 2년 동안 대함대를 조직하고 훈련하면서 전투에 대비했다. 그의 지휘력은 유틀란트 전투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그당시 그의 전술은 심한 비판을 받았지만, 독일의 외양함대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쓸모없게 만든 것은 오늘날 그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유틀란트 전투). 1916년말에 그는 일선 지휘관에서 떠나 해군본부위원회의 제1군사위원(다른 나라의 해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이듬해 독일의 새로운 잠수함과 맞서 싸우려는 그의 노력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의 주장으로 호송선단체제가 채택될 때까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로이드 조지 총리는 1917년말에 그를 해군부에서 사임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뒤, 그는 영국 연방 자치령을 방문하여 전쟁 이후의 해군조직에 관해 조언하는 특명을 띠고 파견되었다. 이 항해에서 그는 뉴질랜드호에 자신의 깃발을 달았다. 그는 1919년에 함대 사령관으로 승진했고, 1920년에는 뉴질랜드 총독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세운 공로로 50,000파운드의 하사금을 받았으며, 1918년에는 귀족이 되어 스카파의 젤리코 자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뒤 총독으로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백작이 되었고, 1925년에는 사우샘프턴의 브로커스 자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저서로 〈대함대, 1914~1916, 그 창설과 발전 및 업적 The Grand Fleet, 1914~1916, Its Creation, Development and Work〉(1919)·〈해전의 위기 The Crisis of the Naval War〉(19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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