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잘리어 왕조

다른 표기 언어 Salian dynasty

요약 독일의 왕조.

독일 왕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배출하던 작센 왕조가 1024년에 단절된 후 프랑크족 계통의 잘리어족인 슈바벤의 콘라트가 독일 황제로 선출되면서 권력을 잡았다. 1027년 콘라트(콘라트 2세)는 신성 로마 황제에 즉위하고 부르고뉴 왕국을 복속시켰으며 이탈리아에서 독일의 세력을 다시 확립했다. 그는 새로운 관리 계급, 즉 황제에 직속된 하급 귀족(ministeriale) 에게 의존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인리히 3세(1039~56 재위)는 게르만족 공작령 5개 가운데 3개를 물려받았다. 그는 하급 귀족을 이용하고 독일 성직자들과 긴밀히 협력해 사실상 교황청을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했으며 따라서 중세 독일 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이룩했다. 그의 아들은 6세 때 그의 뒤를 이어 하인리히 4세(1056~1106 재위)로 즉위했다.

평신도 귀족과 성직자 귀족에게 시달리면서 미성년기를 보낸 후 하인리히 4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73~85 재임)에 의해 개혁된 교황청과 분쟁을 겪게 되었는데 교황은 황제의 지배를 받는 교회를 해방시키려 했다. 성직 임명권을 둘러싼 그들의 분쟁은 그후 거의 2세기에 걸친 교황과 황제의 격심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1076년 그레고리우스가 하인리히를 파문·폐위하자 하인리히는 카노사에서 교황에게 굴복했다(1077. 1). 하인리히 4세는 독일 제후들의 반란을 여러 차례 겪었는데 마지막 반란은 하인리히 5세로 그의 뒤를 계승한 그의 아들이 1105년에 일으킨 것이었다.

하인리히 5세는 재위 기간(1106~25)에 교황청과 평화를 유지했다. 잘리어 왕조는 하인리히 5세가 상속자 없이 죽자 쇠퇴하기 시작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세계사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잘리어 왕조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