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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6년간에 걸쳐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사회의 변화.
36년간에 걸친 일제식민통치기가 우리 역사 전체를 통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일제강점기는 역사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그것이 일제강점기 이전의 개항기와 8·15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를 어떻게 연결지우는가, 8·15해방 이후의 민족분단과 일제강점기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이해가 객관적으로 요구된다.(→ 한국사)
일제강점기 이전의 개항기 30여 년간은 우리 역사가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입헌군주제를 지향했고, 극히 일부가 공화제를 지향하면서 부르주아적 인민주권주의를 실현시키려 했고, 경제적으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항기의 정치적·경제적 지향이 일제강점기에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일본의 덴노 지배체제가 그대로 옮겨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 본국이 가진 극히 제한적인 의회제도마저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고 군인출신 총독에 의한 독재정치가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해 실시되었다.
한편, 경제적인 면에서의 개항기는 농업경제부문에서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가 일정하게 붕괴되는 한편, 자소작·상농층 등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중간층이 성장해갔고, 상공업부문에서는 외국자본의 침투 아래서도 내국자본에 의한 공장제수공업이 일정하게 발전하고 상업자본 및 관료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단초적 공장공업도 발달해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토지조사사업이 강행됨으로써 개항기의 추세와는 달리 자소작 상농층의 성장은 저지되었으며, 그들을 소작농민으로 전락시켜 식민지적 지주소작제를 광범위하게 재편성함으로써 그 사회를 식민지반봉건사회가 되게 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반해 농업경제부문에서의 이같은 반봉건적 요소가 광범위하게 재편성되었고, 또 그것이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해 강인하게 잔존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식자본주의로서의 식민지자본주의가 그 나름대로 원시축적과정과 상업자본주의 단계 등을 거치면서 단계적인 발전을 해왔고, 특히 1930년대 이후 파쇼 지배체제하에서의 공업화를 통해 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에까지 나아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회성격을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인식하든 식민지자본주의사회로 인식하든 간에 그것이 일제강점기 이전 사회의 순조로운 연장선상에 있은 것은 아니며 일제강점기로서의 굴절된 부분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사회체제 아래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또 8·15해방 후 사회적·경제적 요인보다 오히려 정치적 요인에 의해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로 양분되었다.
장차 민족통일이 이루어진 후의 역사학은 통일 이후의 시대를 현대사로 하고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를 통틀어 통일 이전의 근대사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의 사회성격문제나 역사적 위치문제도 그 테두리 안에서 다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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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일제강점기의 사회성격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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