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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의 미추홀(彌鄒忽) , 고구려의 매소홀(買召忽)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소성현(邵城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수주(부평)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숙종대에 경원군으로 승격되었다. 인종대에는 인주로 고치고, 당성군을 속군으로, 재양현을 속현으로 거느렸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7대에 걸친 다섯 임금의 고향이라 하여 경원부로 승격되는 등 고려 후기에 여러 왕비를 배출하여 세력이 컸던 고장이었다. 조선시대인 1392년(태조 1)에 인주로,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인천군으로 변경되었다. 1459년(세조 5)에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외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옛날의 인천은 지금의 미추홀구 관교동을 중심으로 한 작은 지역이었으나, 1883년 인천의 제물항이 개항되면서 크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인천항 감리서가 설치되고, 일본·청나라·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의 지계가 설정되면서 인천은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 변모하여 외국 세력이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가 되어 인천군 등 12개군을 관할했으나, 1896년 도제 실시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비입지 이포면을 남양군으로 이관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인천부는 관할구역이 대폭 축소되어 부내면과 다소면 일부 등 개항장에 국한되고, 대부분의 지역은 부평군과 합하여 부평과 인천의 글자를 따 신설된 부천군에 이관되었다. 1936년에 부천군 문학면 일부, 다주면 일부를 편입함으로써 부의 행정구역의 1차 확장이 이루어지고, 1940년에는 부천군의 서곶면·문학면·남동면·부내면을 편입함으로써 면적의 2차 확장이 이루어지고, 인구가 17만 명을 넘게 되어 당시 전국 제5위의 인구를 가지는 도시로 성장했다.
1949년에 인천부를 인천시로 개칭하고, 1968년에 중구·동구·남구·북구의 4개구를 설치했다. 1981년에 직할시가 되었으며, 1988년에 남구가 남구·남동구로, 북구가 북구와 서구로 분할되었다. 1989년에 옹진군의 영종면·용유면, 김포군의 계양면이 편입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행정구역개편으로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어 강화군·옹진군과 김포군의 검단면이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 또한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 남구가 남구와 연수구로 분구되어, 인천시는 8개구 2개군, 1개읍 19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2018년 7월에는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했다. 이는 옛 인천광역시의 지명 '미추홀'에서 따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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