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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의 인구성장은 크게 4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고출생, 고사망의 유형으로 실질인구성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1920년대에 현대의학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보건, 의료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되는 초기 인구변천기를 맞게 되었다.
그 후 해방과 남북 분단, 6·25전쟁 등으로 인구가 대규모로 월남하여 남한에서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경제개발계획과 가족계획사업으로 출생률이 점차 감소되어 인구성장이 둔화되는 후기 인구변천기를 맞게 되었다. 출생률의 감소추세는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따라 자녀를 적게 가지려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출생률이 더욱 낮아져 선진국 수준인 0.6~0.7%에 이르렀으며, 자연증가율은 1% 미만을 나타냈다.
목차
접기인구성장
한국의 인구성장은 크게 4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고출생·고사망의 유형으로 실질인구성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즉 출생률은 연평균 4~4.5%로 매우 높았으나 사망률도 3~3.5%로 상당히 높아서 인구가 매우 점진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1910년경의 인구는 1,313만 명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현대의학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보건·의료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사망률이 2%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되는 초기 인구변천기를 맞게 되었으며, 8·15해방 직전에는 인구가 2,512만 명에 달했다.
그후 해방과 남북한 분단, 6·25전쟁 등으로 인구가 대규모로 월남하여 남한에서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이 기간 동안에도 유지된 4~4.5%의 출생률은 전쟁 이후의 출산 붐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그결과 1960년경 인구 자연증가율은 3%에 달했다. 이와 같은 불안정한 인구성장기 동안 남한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1960년 2,499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경제개발계획과 가족계획사업으로 출생률이 점차 감소되어 인구성장이 둔화되는 후기 인구변천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정부가 인구억제정책으로 피임법을 도입하여 인구증가율은 상당히 낮아졌지만 절대적인 인구는 증가하여 1970년 3,147만 명에 이르렀다. 출생률의 감소추세는 사회적·경제적 발전에 따라 자녀를 적게 가지려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1980년대 초에는 출생률 2~2.3%,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6%로 낮아졌으며, 1980년에는 인구가 3,744만 명에 달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자녀에 대한 의존 경향이 약화되면서 출생률이 더욱 낮아져 선진국 수준인 0.6~0.7%에 이르렀으며, 자연증가율은 1% 미만을 나타냈다.
1990년 현재 인구는 4,352만 명인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1년경에 약 5,060만 명의 수준에서 정체상태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30여 년 간의 출생률 감소추세는 합계출산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여자가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이 1960년에는 6.0이었으나, 1985년에는 1.7로 나타나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망률의 지속적인 감소는 평균수명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60년 이전에는 50세 안팎이었던 평균수명이 1990년에는 71.3세로 나타났으며, 여자의 경우에는 평균수명이 75세를 넘게 되었다.
인구분포와 인구밀도
한국의 인구분포는 지역간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우선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1960년대 이후 농촌지역의 인구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대량 이동하여 그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균등한 인구분포현상은 '대도시지역의 과밀화, 농어촌지역의 과소화'라는 국토공간 구조상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한편 이촌향도 현상의 결과 도시화율은 1960년 35.8%였던 것이 1990년에는 79.4%로 늘어났다. 도시로의 인구집중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경우 전국 인구의 비중이 1990년에는 42.7%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에 농촌인구비율이 높았던 강원도·충청북도·전라남도·전라북도 등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990년 432명/㎢으로 방글라데시·타이완·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4위이다. 그러나 시·도 간의 인구밀도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서울이 1만 7,554명/㎢인데 비해 강원도는 94명/㎢으로 서울이 무려 187배나 높은 인구밀도를 보인다.
한편 경지면적당 인구밀도는 1,940명/㎢으로 일본·이집트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인구구조
8·15해방 전 성비는 남초현상을 나타냈으나, 그후 점차 성비가 낮아져서 1990년 100.7 : 100으로 대체로 남녀 비율이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도시지역으로의 젊은 연령층의 선별적인 인구전입으로 인해 결혼 적령기인 20~25세 인구집단의 성비는 도시의 경우 90 : 100으로 여초현상이 나타나는 반면,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190 : 100으로 남초현상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인구구성은 출생률이 높았던 1960년에는 다산다사형의 전형적인 피라미드 유형의 인구구조였으나, 출생률이 점차 감소함에 따라 방추형의 인구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나 청장년층의 인구유입이 많은 대도시와 공업도시들의 연령별 인구구조는 노년층의 인구비율이 높은 농촌지역의 인구구조와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농촌지역에서는 젊은 연령층의 유출로 인해 노동력의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한편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변동되어 핵가족화 현상과 가구원수의 감소 및 단독 가구수 증가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8·15해방 전까지의 인구이동은 주로 정치적·사회적 원인에서 이루어진 국제적인 이동이었다. 그러나 8·15해방 이후 특히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주로 국내이동으로, 농촌지역의 인구가 도시지역으로 이동하는 이촌향도현상이 두드러진다.
인구정책
한국의 인구정책은 1962년 경제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추진된 가족계획사업과 해외이주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인구정책은 당시의 빈곤을 극복하고 실업자의 증가로 악화된 국민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우선적인 방법으로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추진되었다. 가족계획사업이 실시되면서 출생률이 크게 감소되어 인구성장률이 둔화되었다. 1960년대말 이래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대도시로의 인구집중현상이 나타나 지역간에 인구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이는 국가발전에 역기능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국토이용을 초래하게 되어 인구분산정책을 수립·실시하게 되었다.
지난 20여 년 간 인구 및 산업의 분산화를 목적으로 하는 시책들이 시행되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좀더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인구분산정책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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