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이극돈

다른 표기 언어 李克墩
요약 테이블
출생 1435(세종 17)
사망 1503(연산군 9)
국적 조선, 한국

요약 1457년 친시문과에 급제하여 전농시주부·직강·응교·필선·집의 등을 지냈다. 1468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뒤 대사헌·형조참판을 거쳐 1471년 좌리공신 4등으로 광원군에 봉해졌다. 1473년 성절사, 1476년 주청사, 1484년에는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평안도·강원도·전라도·경상도·영안도 관찰사와 이조·병조·호조 판서를 거쳐 의정부 좌찬성·우찬성을 지냈다. 1498년 실록청 당상관으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사초를 정리하다가 김일손이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과 훈구파의 비위사실을 기록한 것을 발견하고는 유자광에게 고했다. 유자광이 이를 연산군에게 상계함으로써 김일손을 비롯한 영남 출신 신진사림파 학자들이 제거되는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익평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나 뒤에 관직과 함께 추탈되었다.

본관은 광주. 자는 사고(士高). 아버지는 우의정 인손(仁孫)이다. 1457년(세조 3) 친시문과에 급제하여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직강·응교·필선·집의 등을 지냈다. 1468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뒤 대사헌·형조참판을 거쳐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광원군에 봉해졌다.

1473년 성절사(聖節使), 1476년 주청사(奏請使), 1484년에는 정조사(正朝使)로 각각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평안도·강원도·전라도·경상도·영안도 5도의 관찰사와 이조·병조·호조의 판서를 거쳐 의정부 좌찬성·우찬성을 지냈다.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 세조비 정희왕후(貞憙王后)의 국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장흥(長興) 기생과 어울린 사실을 김일손(金馹孫)이 사초(史草)에 기록한 일로 그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1498년(연산군 4) 실록청 당상관으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사초를 정리하다가 김일손이 스승인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 弔意帝文〉과 훈구파의 비위사실을 기록한 것을 발견하고는 총재관(總裁官) 어세겸(魚世謙)에게 고했으나 효과가 없자, 김종직에게 사감(私感)이 있는 유자광(柳子光)에게 고했다.

이 사실을 들은 유자광이 노사신(盧思愼)과 함께 연산군에게 상계함으로써 김일손을 비롯한 영남 출신 신진사림파의 많은 학자들이 제거되는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사화가 있은 뒤 이 사화의 주동자인 그도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 즉시 보고하지 않은 죄로 잠시 파직되었다가 다시 광원군에 봉해졌다. 익평(翼平)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나 뒤에 관직과 함께 추탈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이극돈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