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의군부

다른 표기 언어 義軍府

요약 1919년 동만주의 한국인 민족주의자들이 만든 무장독립운동단체. 북로군정서 사령부에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과 연합하여 청산리전투와 어랑촌전투에서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1921년 자유시사변을 겪으면서 다른 독립군부대와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김좌진 등이 군단을 재조직하려 했으나 연해주에서의 독립군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그대로 와해되었다.

3·1운동에 자극받은 전(前) 의병부대장 이범윤(李範允)·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김청풍(金淸風)·김현규(金鉉奎) 등은 1919년 4월 동만주 옌지 현[延吉縣] 밍월거우[明月溝]에서 허룽[和龍]·왕칭[汪淸]·훈춘[琿春] 일대의 청년들을 모집하여 6개 대대 병력의 무장독립운동단체를 조직했다. 본부의 구성은 총재 이범윤, 총사령 김현규, 참모장 진학신, 총무부장 최우익, 군사부장 김청풍,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었다. 한편 본부 외에 중부의군부(中部義軍府)가 있어 참모장 고평, 서무 이을(李乙), 재무 김종헌(金鍾憲), 외교 김종환(金鍾煥), 통신 박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 강문주 등이 활동했다.

중부의군부는 실제 다수의 병력을 보유하고 전투활동의 중심세력이었기 때문에 조선독립군이라고도 불렀다. 1920년 노야령(老爺嶺) 동북 지점에서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지방군벌과의 전투가 벌어져 이를 격퇴하던 중 뒤쫓아온 일본군과의 교전으로 이을·최우익 등 10여 명이 전사했다. 이에 분산되어 있던 중부군·본부군이 다시 합쳐 진학신·지장회 등이 부대를 이끌고 허룽 현 싼다오거우[三道溝] 북로군정서사령부(北路軍政署司令部)에서 여러 무장독립단체들과 연합, 청산리·어랑촌 전투에 참여하여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이후 옌지 현 춘양 향에 들어갔다가 부대를 수습하여 헤이룽 강[黑龍江], 노령 방면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1921년 6월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자유시사변을 겪어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1924년 이범윤·김좌진·최진동·김규식 등이 독립군단을 재조직하려 했으나, 일소협약 등으로 연해주 지역에서의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짐에 따라 실패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의군부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