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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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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24(중종 19)
사망 1594(선조 27)
국적 조선, 한국

요약 1587년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조선의 요구에 따라 종계를 바로잡은 <대명회전>의 조선관계 부분 한 질을 받아왔다. 155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고, 이후 수찬·지평·이조좌랑·병조정랑 등을 지냈다.
1565년 문정왕후 장례 때 산릉도감을 지냈고, 1573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회령부사를 겸했다. 1589년 좌찬성으로 판의금부사를 겸하여 정여립 모반사건을 다스렸고, 그 공으로 평난공신 3등으로 기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591년 우의정이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으로 피난갔다. 일본군이 서울에서 후퇴하자 먼저 서울에 들어와서 불탄 도성을 정리했다. 1594년 좌의정으로서 해주에 있는 왕비를 호종하던 중 죽었다.

본관은 기계.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여림(汝霖)이고, 아버지는 생원 관(綰)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로 사복시정(司僕寺正) 충세(忠世)의 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다. 1557년 강원도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병조좌랑·수찬·지평·이조좌랑·병조정랑·교리·집의 등을 지냈다. 1563년 명종 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삼촌으로 전횡을 일삼던 권신 이량(李樑)을 탄핵했다.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장례 때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지냈다.

1573년(선조 6)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회령부사를 겸했으며, 다음해 개성유수를 거쳐 경상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1587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조선의 요구에 따라 종계(宗系)를 바로잡은 〈대명회전 大明會典〉의 조선관계 부분 한 질을 받아왔다. 1589년 좌찬성으로 판의금부사를 겸하여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다스렸다. 그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으로 기성부원군(杞城附院君)에 봉해졌으며,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뒤 이조판서를 거쳐, 1591년 우의정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으로 피난갔고, 평양에서 세자인 광해군을 따라 종묘사직의 신위를 모시고 함경도 쪽으로 갔다. 이어 도체찰사를 겸임하여 방어태세를 갖추면서, 격문을 각도에 보내어 의병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일본군이 서울에서 후퇴하자, 먼저 서울에 들어와서 불탄 도성을 정리했다. 그러나 앞서 자신의 가족만 먼저 피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한때 삭직(削職)되었다. 1594년 좌의정으로서 해주에 있는 왕비를 호종하던 중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장서(藏書)가 많기로 유명했다. 문집으로 〈송당집 松塘集〉이 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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