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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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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578. 10. 4 |
국적 | 비잔틴 |
요약
비잔틴의 황제(565~578 재위).
(영). Justin Ⅱ.
아바르족·페르시아인·롬바르드족 등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 비잔틴 제국의 결속을 유지하려 했으나 끔찍한 군사적 불운 때문에 좌절되었다.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조카이자 측근 보좌관이었던 그는 삼촌이 죽은 후 565년 11월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통치 초기에 단호하고 상식에 입각한 정책을 폈는데 국채를 보상하고 과도한 세금을 감면했으며 지출을 삭감했다. 재위 초기에는 단성론자 그리스도교도에게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성론자 파벌들을 통합시킨 후 다시 그들을 정통파와 연합시키려 했다. 그러나 571년 3월부터 박해 정책을 펴서 장문(長文)의 반단성론 교령을 반포하고 모든 성직자로 하여금 불응하면 수감 처벌한다고 위협하여 교령에 서명하게 했다.
서유럽에서 그는 프랑크족과 동맹을 맺었지만 568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공을 막을 수 없었고 곧 이탈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영원히 잃었다. 그보다 덜하긴 했지만, 아바르족 및 페르시아인과의 관계 또한 좋지 않았다. 그는 즉위 직후에 전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평화 구걸 정책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아바르족의 조공 요구를 거절했다.
568년에는 아바르족 및 페르시아인에 맞서 중앙 아시아의 서부 투르크인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도나우 강 유역의 국경을 유린하고 있던 아바르족과 전투를 치른 후 571년 그들과 타협해야만 했고 그로부터 3년 후 비잔틴이 매년 아바르족에게 공물을 바치기로 하는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 격분한 서부 투르크인들은 576년 유스티누스와의 동맹을 파기했을 뿐만 아니라 크림 반도에 있는 비잔틴의 요새를 점령했다.
571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르메니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비잔틴 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다음해 늦여름에 유스티누스의 군대는 페르시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비잔틴의 침공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영토로 쳐들어와 573년 11월 다라를 함락시킨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주요도시를 점령했다.
유스티누스 황제는 다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실성하게 되어 황후 소피아가 그를 대신해서 574년 평화 협상에 착수했다. 티베리우스 장군을 양자로 삼자는 소피아의 권유를 받아들인 유스티누스는 574년 12월 그에게 부황제(caesar)의 칭호를 수여했다. 그후 유스티누스는 명목상으로는 계속 황제의 자리를 유지했으나 죽을 때까지 은퇴 생활을 했다(→ 이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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