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640, 잉글랜드 슈롭셔 슈루즈베리 근처 클라이브 |
---|---|
사망 | 1716. 1. 1, 런던 |
국적 | 잉글랜드, 영국 |
요약 영국의 극작가.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청교도주의와 타오르는 육체적 본능 사이에서 개인이 겪는 내적 갈등을 희곡을 통해 해결해보려고 했다. 이 시도는 〈시골 아낙네 The Country-Wife〉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작품에서 지나친 질투와 자기만족에 대한 풍자는 매우 우스꽝스런 상황묘사와 조화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내는 대화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대인들에게는 풍자가로서 가장 인정을 받았으며, 윌리엄 콩그리브는 그를 가리켜 '이 울고 있는 시대에 매를 때리도록' 태어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15세에 프랑스로 유학가 그곳에서 로마 가톨릭교도가 되었으나, 1660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옥스퍼드대학교를 떠나 법률공부를 시작했으나, 연극을 연구하는 등 오락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이미 첫 희곡 〈숲속의 사랑:세인트제임스 공원 Love in a Wood:or, St. James's Park〉의 초고를 썼는데, 1671년 가을 이 작품이 런던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았다. 찰스 2세의 총애를 받던 클리블런드 공작부인 바버라 빌러스의 마음에 든 위철리는 궁정 재사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2번째 희곡 〈신사 댄스 교사 The Gentleman Dancing-Master〉는 1672년 공연되었으나 실패작이었다.
이런 초기 희곡들에는 모두 뛰어난 익살스런 장면이 있으며 여러 종류의 가식적인 인물들(멋쟁이, 방탕아, 자칭 재사, 온갖 점잖은 체하는 사람 등)을 풍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기분을 정화시키는 과장'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1676년 공연된 〈솔직한 남자 The Plain-Dealer〉에서는 탐욕을 풍자했는데, 풍자가 거칠고 잔인하지만 예리하고 효과적이다. 이보다 1년 앞서 1675년 공연된 〈시골 아낙네〉에서도 사회와 풍속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혹독하지만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증오하고 있다는 느낌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즈음 상류층에 휩쓸려 방종한 생활을 하던 그는 1678년 병에 걸렸다. 1680년 드로이다 백작부인과 몰래 결혼했는데, 엄격한 청교도인 그녀가 그를 꼼짝 못하도록 간섭했기 때문에 그는 궁중에서 인기를 잃었다. 1년 뒤 그녀는 그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기고 죽었는데, 유언장이 문제가 되어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한 위철리는 파산하여 채무자로 감옥에 갇혔다. 7년 뒤 제임스 2세는 그를 풀어주고 빚을 거의 다 갚아주었으며 약간의 연금까지 주었다. 그는 늙은 나이에 다시 젊은 아내를 얻었고, 눈을 감기 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병자성사를 받았는데, 이것은 제임스 2세가 그를 구해준 뒤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했기 때문이었다. B. 유진 매카시가 1980년에 그의 전기를 출판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