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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

다른 표기 언어 George C(orley) Wal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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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9. 8. 25, 미국 앨라배마 클리오
사망 1998. 9. 13, 몽고메리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민주당 소속 정치가.

앨라배마 주지사를 4차례 지냈다. 1960년대에 연방정부가 명령한 인종차별철폐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남부의 투쟁을 이끌었다.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제3당 후보로 출마해 열렬하게 활동했으나 패배했다.

1972년 5월에는 선거에 앞선 암살기도로 부상을 입어 후보직을 사퇴했다. 1980년대 들어 이전의 인종차별주의적 입장에서 후퇴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월리스는 1942년 고학으로 앨라배마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복무를 한 뒤 주(州)검사보로 일했으며, 그후 주의회 의원으로 2차례 당선되었다. 1953~59년 앨라배마 제3순회재판소 판사로 있을 때 미국민권위원회가 흑인투표권 차별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호전적 판사'로 유명해졌다(→ 미국민권운동).

월리스는 194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강력한 민권정강조항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임으로써 처음으로 미국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1958년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4년 뒤 인종차별문제와 경제문제를 강조하는 정책을 내걸고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재임 첫해인 1963년 6월 월리스는 앨라배마대학교에 흑인 학생들이 등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교사를 고수하겠다"라는 자신의 공약을 지켰다.

연방정부가 교육분야에서 주의 권위를 부당하게 침입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연방정부의 입장을 따르지 않던 월리스는 연방정부 소속 주방위군의 압력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굴복했다. 그후로도 터스키기·버밍햄·헌츠빌·모빌 등지에서 연방정부와 충돌함으로써 그는 학교에서 인종차별철폐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월리스는 법적으로 재선에 출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인 루얼린이 196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루얼린은 1968년 집무중 죽었다. 월리스는 다시 1970, 1974년에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1968년 반자유주의적 정당인 미국독립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 46표를 얻었다.

4년 뒤인 1972년 5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던 중 메릴랜드 주 로렐에서 암살 기도로 부상을 입고 영원히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1976년 그는 다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출마했다. 1982년 휠체어를 타고 다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철회한다는 내용의 유세를 벌임으로써 흑인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1987년 건강이 악화되어 정치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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